작년이었던가?
영업용 맥주가 아닌 가정용 맥주를 판매하는 가맥(가게 맥주)을 두고 '슈퍼마켓에서 음식물을 조리하거나 술을 판매할 수 없다'는 식품위생법상 적법성 여부에 대해 행정기관과 시민단체, 가맥 이용자들 사이에 숱한 갑론을박이 오갔던 적이 있다.
당시 전주에서 영업 중인 가맥이 영세한 곳을 포함해 600여 곳이라는 통계를 들은 적이 있다. 실정법상 탈세의 소지가 있다 해도 주머니 사정이 빤한 직장인이나 학생들 처지에선 가게 한 곁에서 직접 술을 팔면서 간단한 안주를 조리해 주는 가맥은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큰 위안을 주는 게 사실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다'란 얘기는 세법상의 문제일 뿐 손님들에게 싼 가격에 퀄리티(질) 높은 안주를 제공하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될 것 같진 않다.
'하루에 맥주를 수십 박스씩 파는 소위 기업형 가맥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여서 문제가 없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으나, 가맥집 중 상당수는 아예 일반음식점으로 허가를 받아 속 편히 영업 중이다.
'임실슈퍼'는 전주 가맥의 원조라는 'J슈퍼'와 전혀 다른 모습을 한 가맥집이다.
이곳 마니아들은 달짝지근한 'J슈퍼' 황태장은 하수(下手)나 중수(中手)들이 선호하는 것이지, 진정한 '가맥의 지존'은 당연히 '임실슈퍼'의 명태포와 소스라고 주장한다. '임실슈퍼'는 일일이 손으로 가시를 발라낸 촉촉하면서도 쫀득한 명태포가 일품으로 그 식감에 반한 손님들이 '촉태'(촉촉한 명태)라는 애칭까지 지어줬다. 간장·마늘·고춧가루·청양고추·통깨 등이 들어간 특제 소스는 일반 전주 가맥집의 황태장처럼 달지 않고 외려 살짝 간간하다.
소스의 양념을 명태포에 얹어 먹노라면 테이블 위에 맥주가 절로 동난다. 좀도둑이 따로 없다.
이 집의 진짜 비밀 병기는 엉뚱한 데 있다. 북어수제비가 바로 그것. 명태포를 정리하고 남은 북어 머리에 두부·콩나물·청양고추·수제비를 넣고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여 나온다. 더 놀라운 사실은 숙취 해소에 그만이라는 이 북어수제비가 술 마시는 손님에게는 공짜라는 것이다.
속을 뻥 뚫어 주는 시원한 국물에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수제비가 무료라니 이곳에 매료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북어수제비를 끓이는 비결이 뭐냐'는 물음에 주인장 공숙남 씨(58)가 "내 마음과 정성이 들어간 것 말고 별다른 게 없다"며 웃는다.
2003년 '임실슈퍼'를 인수한 공 씨는 고생고생하며 가맥집 노하우를 터득했단다. 가격 대비 갑오징어 크기가 월등하고, 라면 같은 간단한 요깃거리도 주문이 가능하다.
▲ 메뉴: 맥주 2500원, 황태 1만 원, 명태포 1만5000원, 갑오징어 2만 원, 계란말이 6000원
▲ 영업 시간: 오후 2시~다음날 새벽 1시, 지정된 휴일 없음
▲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1가 14-2(농협 경원동지점 부근)
▲ 전화: 063-288-1896
김병대(블로그 '쉐비체어'(blog.naver.com/4kf)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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