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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의 서예·한문 이야기] ②백범 김구 선생의 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민족밖에 없다"

不變應萬變 -乙酉秋, 返國前夕, 白凡 金九

 

변하지 않는 것으로 만 번 변하는 것에 대응하자.

 

-을유년 가을, 조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저녁 백범 김구

 

變:변할 변/應:응할 응/乙:새 을/酉:닭 유(12지의 열 째)/秋:가을 추(작품에서는 '禾'와 '火'를 바꿔 썼다. 그렇게 써도 된다.)/返:돌아올 반/前: 앞 전/夕:저녁 석/ 凡:무릇 범, 평범할 범

 

이 작품은 백범 김구 선생이 광복된 조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저녁에 상해에서 쓴 것이다. 여기서 변하지 않는 것이란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물론, '민족'외에도 불변의 가치는 많다. 사랑, 진실, 우애... 등) 그리고 만 번 변하는 것이란 당시 동탕하던 국내외 정세를 지칭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한엔 미군, 북한엔 소련군이 들어오고 우익과 좌익이 대립하고.... 백범 선생께서는 이처럼 천변만화하는 국내외 정세 앞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민족밖에 없다는 생각아래 민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그것으로 급변하고 동탕하는 국내외 정세에 대응하자는 뜻에서 이 글을 휘호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에 우리는 백범 선생의 깊은 뜻을 헤아리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급변하는 만변의 상황에 발 빠르게 대처해야한다는 약삭빠른 논리를 앞세워 '민족'이라는 가치를 뒷전으로 밀쳐두고 남과 북이 따로 정부를 수립하였다. 그 결과, 우리는 6.25라는 엄청난 비극을 겪었고, 지금도 참담한 심정으로 연평도 사건을 겪고 있다. 설령, 조금 늦더라도 '민족'이라는 불변의 관계이자 가치를 최우선시하여 통일정부를 수립했어야 한다. '민족'이라는 불변의 가치를 통절하게 깨달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한번 갈라선 것이 화근이 되어 60년이 넘도록 남과 북의 동족이 '주적(主敵)'이라는 이름의 원수로 지내고 있다. 이 비정함과 가혹함과 우매함과 미개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과연 우리는 문화민족일까? 게다가 '6자회담'이라는 이름아래 공공연히 끼어드는 들고 있는 외세를 오히려 환영하고 있으니....

 

이 작품은 백범 선생의 유작 중 최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글 내용도 명문이고, 그런 글을 택한 선생의 시대의식도 이미 도(道)에 통한 경지이며, 서예적 필획(筆劃:한 글자를 이루는 각각의 획)이나 결구(結構: 한 글자, 한 글자의 짜임새)나 장법(章法:전체적인 어울림)등 모든 것이 어느 작품보다 빼어나다.

 

사람들은 피카소가 자신의 고향마을에 독일이 무자비한 폭격을 가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린〈게르니카〉에 대해 전쟁의 공포와 민중의 분노와 슬픔을 격정적으로 표현한 명작이라는 찬사를 보낸다. 왜 피카소의 작품만 세계적인 명작이 되어야 하는가? 1947년(을유년), 미국의 요청에 의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해체하고 개인자격으로 쓸쓸히 귀국하는 노(老)독립투사가 가슴에 용솟음치는 절절한 감정을 승화하여 먼 미래를 꿰뚫어 보는 깊은 안목으로 한 민족과 국가의 방향을 정확하게 제시하며 쓴 이 작품〈不變應萬變〉이 〈게르니카〉보다 한 차원 높은 명작이 아닐까? 명작이다. 다만, 그동안 우리가 이작품의 가치를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이제는 우리의 이런 서예작품들이 세계적 명작으로 대접받는 시대가 되게 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우리 것에 담긴 가치의 위대함을 알고 그것을 소중하게 간직하려는 마음을 가짐으로써.

 

/ 전북대 중문과 교수·세계서예 전북비엔날레 총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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