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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문화, 젊은 스타일] ④발레리노 김명규

작년 국내·외 무용 콩쿠르 1위 휩쓸어…해외 유명 발레단 입단 제의도 이어져

발레리노 김명규(23·유니버셜 발레단)는 몸으로 시(詩)를 쓴다. 키 178㎝, 몸무게 65㎏. 반복 훈련으로 근육만 남은 마른 몸이지만, 뼈 3000 마디를 모두 움직여 춤의 황홀함을 이야기한다. 3월 공연을 앞두고 있는 '돈키호테'에서는 집시 대장을 맡았다. 집시 대장은 거침 없이 온 몸으로 사랑을 갈구하는 '짐승남'(짐승처럼 거친 남자의 신조어). 지난해 국제 콩쿠르에서 '코리안 비스트'(Korean Beast·한국에서 온 짐승남)라는 애칭도 얻었다. 체공시간이 긴 높은 점프 덕분이다.

 

독일 베를린 콩쿠르 그랑프리, 동아무용 콩쿠르 그랑프리, 이탈리아 로마 콩쿠르 금상, 불가리아 바르나 콩쿠르 금상…. 지난해 '김명규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등 릴레이'는 매일 잠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만 빼고 발레만을 위해 산 결과물이다.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하니, 날고 기는 얘들이 정말 많더라구요. 베를린 콩쿠르에 앞서 대학 2학년 때 처음으로 나간 불가리아 바르나 국제발레 콩쿠르에서는 예선 탈락했어요. 국제 무대 벽이 높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죠. 두고 봐라. 내가 다음엔 제대로 보여준다. 이런 오기가 생겼어요. 어렸을 때부터 지는 걸 정말 싫어했거든요."

 

전주 출생으로 본래 '슛돌이'였던 그는 중학생 시절 유소년 축구 대표팀에 몸을 담았다. 하지만 일본 팀과의 경기에서 진 뒤 호되게 벌을 받는 장면을 본 어머니는 무용을 권유했다. 그 때 만난 첫 스승이 염광옥 정읍리틀발레단 단장이다.

 

"기본기가 없어 고생했는데, 정말 '엄마처럼' 지도해 주셨어요. 발레 시작한 지 일주일 밖에 안된 상태에서 전주예고 무용과 시험을 봤는데, 남자는 저밖에 없어 미달로 들어갔죠. 하늘의 뜻이었던 것도 같아요(웃음)."

 

그도 처음엔 몸매가 드러나는 '쫄쫄이'를 입어야 하는 발레가 싫었다. 한국무용은 지루하고 느렸고, 현대무용은 난해했다. 하지만 전주예고 1학년 때 무용 콩쿠르 구경을 갔다 발레에 꽂혔다. 고교 시절 매일 발을 꺾고 다녔고, 심지어 장롱 속에 발을 넣은 채로 잤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진학 후 최고의 발레리노가 되겠다는 욕심은 더욱 커졌다. 모래 주머니를 양 발에 차고, 잘 때 다리를 '쫙' 벌리고 잤을 만큼 유연성을 키우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은 계속됐다.

 

이같은 혹독한 훈련 외에도 끊임없는 다이어트는 몸을 만드는 동시에 마음을 조각해 나가는 일이다. 연습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목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피자·햄버거·치킨 가게를 그냥 지나치는 일은 고역이다.

 

"살이 정말 잘 찌거든요. 요즘엔 연습량이 워낙 많으니까 안찌긴 하지만…. 못 참을 것 같은 날은 일부러 가게들이 없는 어두운 길로 다닙니다.(웃음)"

 

발레를 배운 지 7년 만에 이원국·김용걸·김현웅을 잇는 한국 발레리노의 기대주로 성장한 데에는 김선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공도 컸다.

 

"교수님이 늘 저한테 해주시는 말씀이 있어요. '국립발레단 주역인 (김) 현웅이는 너보다 더 못했고, 더 늦게 했다고. 그러나 성장했다고.' 외국 것을 우리 몸에 가장 알맞게 만들어 한국 무용수들이 가진 신체적, 기능적 재량을 펼칠 수 있게 도와 주세요. 정말 신 같아요, 신."

 

그가 인내했던 시간, 앞으로 견뎌야 할 고통을 듣고 있노라면, 발레가 아름답고 신비한 것으로 비춰지는 건 대단한 착각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발레가 주는 황홀함, 꿈에 대한 열정을 쉴새 없이 이야기했다.

 

"학교 다닐 때는 콩쿠르 입상이 전부였어요. 하지만 발레단에 오니까 더 복잡한 고민을 하게 돼요. 예술에는 정답이 없잖아요. 어떻게 하면 관객을 더 즐겁게 해줄 수 있을까, 발레를 더 알릴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요."

 

지난해 국제 콩쿠르 수상으로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미국 워싱턴발레단 , 캐나다 벤쿠버 발레단 등으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은 그는 당분간 국내 발레단에서 기본기와 경험을 더 쌓고 싶다고 했다. 한국 발레가 세계 최고로 인정 받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국내는 발레에 대한 관심이나 지원이 열악합니다. 더 많은 발레단이 만들어져서 누구나 발레를 향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직업 발레리노가 돼도 봉급은 많지 않아요. 결국 더 나은 춤을 추게 되는 것은 관객의 박수죠. 계속 춤을 추고 싶습니다."

 

이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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