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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문화, 젊은 스타일] ⑦'한국문학 기대주' 소설가 백가흠

끔찍한 현실에 순종하는 사회 적나라하게 그려내…"좋은 소설은 독자들에게 좋은 질문 던지는 것"

현실은 때론 소설보다 더 잔혹하다. 일본 대지진 참사가 그렇다.

 

하루 아침에 집이 가족이 쓸려내려갔다. 멀쩡히 눈을 뜨고도 당한 난데없는 재앙이다.

 

패닉 상태인 일본을 보고 있으려니, 그가 생각났다. 소설가 백가흠(36)이다.

 

익산에서 태어나 명지대 문예창작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뒤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그가 발표한 두 편의 소설 『귀뚜라미가 온다』 (2005), 『조대리의 트렁크』(2007)는 처참한 현실의 결정판이다.

 

아들이 늙은 노모에게 이빨이 다 뽑힐 정도로 매질을 당할 때, 스물세 살 남자는 '엄마뻘' 되는 서른일곱 살 여자와 몸을 섞는다.

 

어린 딸을 티켓 다방에 팔아버리는 아버지나 떠나려는 애인을 둘씩이나 감금하고 성폭행 동영상으로 협박하는 남자 등이 셋트로 등장한다. "지랄하셔요, 미친놈께서는." 그의 작품에 나온 대사를 인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쯤 되면 그에게 묻고 싶어진다. 대체 왜 그렇게 가혹하냐고, 소설 속 주인공들이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지 않느냐고.

 

"소설 한 편을 쓰고 나면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어요. 위태로운 삶을 그리다 보니 저도 작가이긴 하지만, 냉정함이 허물어질 때가 많거든요. 인물들도 그렇고. 내가 삐긋하면 목숨이 날아가기도 하고,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그래도 두번째 소설부터는 농담이 됐습니다.

 

개인적 파국은 줄어든 대신 사회적 맥락으로 확장됐죠. 결국 출구없는, 폭력적인 사회를 말하고 싶었지만."

 

신문 토막 기사에서 소재를 얻는 그가 주목하는 것은 자의든 타의든 간에 사회에서 밀려나는, 사회적 약자들이다.

 

최근에는 대상이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남성에서 노인, 아동 등으로 옮겨졌다. 그는 "예전엔 서정적 문체로 폭력의 양상을 세밀하게 표현했는데, 인물 설정을 바꿔 묘사에 기대지 않고도 극악함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의 작품에서는 부조리한, 반인류적인 현실 속에서도 배꽃 흩날리는 서정성이 읽힌다.

 

하지만 인간 백가흠은 '정말' 순박하다. 느릿느릿한 말투라 더더욱 순해 보인다.

 

100년 이상 기독교를 믿어온, 집안에서 장로가 5명이나 나온 독실한 개신교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전직 교사인 아버지 백영기 이리신광교회 장로는 당시 서라벌예술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문청(文靑)'이자 한국 문단의 팬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임덕례 권사는 그의 가장 '열렬한' 독자.

 

집안 분위기 '탓'인가. 그는 올해 웹진 문지에 종교적 영역까지 건드린 '향(가제)'을 연재했다. 소설의 모티브는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베드로후서 2장 7절)'다.

 

"성경에 보면 롯 이야기가 나오는 구절이 있죠. 신이 소돔과 고모라라는 도시를 멸망시키는 과정에서 롯은 의인으로 묘사됐는데, 나중에 딸들과 근친상간을 하잖아요. 과연 의로운 것은 무엇이고, 의롭지 않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이 갖는 탐욕 나태 등이 가져오는 제도화된 폭력성을 제3지대 안에서 다시 들여다 보고 싶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좋은 소설은 좋은 질문을 독자에게 권하는 것'이다. 하지만 엽기적인 현실에서 당신은 무얼 했느냐고 매번 물어야 하는 그는 힘이 든다. '졸라도 들은체하지 않고, 화내도 아랑곳하지 않는' 소설은 언제나 뒷모습만을 보여준다. 그는 "뒤통수만 매만지다 얼굴 한 번 못 보고 퇴짜당한 기분"이라고 했다. 올해 두 권의 소설 『향』 (가제), 『황혼』(가제) 출간을 앞두고 있다. 다시 또다른 사랑을 찾아 황급히 자리를 떠야 할 때다. 신기하게도 인터뷰가 마무리될 즈음 그의 소설이 덜 불편해졌다.

 

어쩌면 끔찍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사회를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 아닐까.

 

이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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