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08년 8·15 경축사에서 국가브랜드 선언을 하고 이듬해 초 국가브랜드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그간 다양한 활동으로 국민들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오는 8월말엔 국가브랜드 종합박람회가 열려 세계에 자랑할 브랜드 상품과 박세리, 김연아 등 한국을 빛낸 인물들이 총망라될 것이다. 두말 할 것도 없이 국가브랜드가 올라가면 국가 신인도 뿐만 아니라 경쟁력이 올라가 이로인한 국부(國富) 창출이 엄청나다.
얼마 전 밤잠을 설치게 한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의 성공은 우리의 위상을 한껏 끌어올렸고 국가브랜드에도 큰 공헌을 할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초대형 국제 행사들이 줄줄이 열릴 것이라 생각하니 우리의 저력에 자긍심마저 느껴진다.
최근 중국은 조선족 아리랑을 등재한다하여 우리를 황당하게 했다. 이들은 벌써 6~7년 전 부터 면밀하게 작업을 해왔고 아리랑뿐 아니라 혼례 풍습 등 여러 세속을 자기네 것으로 만들 계략을 꾸미고 있다고 현지 전문가는 말한다. 바야흐로 눈에 보이는 영토만 전쟁이 아니다. 연성(軟性) 국토인 '문화영토' 확보를 위한 싸움이 더 치열할지 모른다.
우리 경제와 외교력이 크게 신장한 만큼 국가브랜드위원회 혼자서만 한국을 알릴 것이 아니라 지자체도 도시 브랜드 위원회를 결성해 체계적인 목표를 세우면 어떨까. 사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고는 하지만 곧바로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은 못된다. 아리랑 가락을 피리로 부는 것도 좋지만 오보에나 클라리넷으로 알릴 수 있다면 전파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물놀이 역시 한국 악기이지만 세계의 누구도 연주하지 않는다. 세계 공통 문법은 오케스트라, 오페라, 합창, 발레다. 이들이 우리 것을 즐겨 연주할 때 글로벌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과연 우리가 어떤 작품을 내놓을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런데 우리 산업에서는 오랜 기간의 수입을 통해 자동차, 조선, 스마트폰 등 그야말로 세계 브랜드의 상품들이 크게 늘어났다. 전자제품만 해도 소니를 부러워했던 시절이 오래전에 지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유독 예술계만큼은 전통과 현대가 서로 동떨어진 듯 서양 예술의 재현에만 너무 많은 시간과 기회를 뺏기고 있다. 우리 오케스트라가 우리 아리랑을 연주하는 것을 눈씻고 볼 수가 없고 오페라도 국민들에게 관심을 끌고 지속적인 공연이 가능한 레퍼토리가 어디 있는가.
이제는 모든 예술 분야가 어떻게 하느냐 보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때이므로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 것을 뛰어넘어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제 고장의 토산품이나 자연경관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포츠에서처럼 누구나 참여하고 공인하고 함께 즐기면서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옹고집으로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 라 외치기만 하고 전통의 재발견, 재해석으로 가공하지 않은 채 묻어만 둔다면 아리랑에 이어 많은 것을 뺏기게 된다.
스포츠와 문화가 세상의 사람들을 움직이는 키워드다. 그래서 21세기 총성없는 전쟁의 시대라 말하지 않는가. 결국 브랜드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실체라면 우리보다 상품을 사주는 입장에 대한 배려의 시각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일전에 읽은 천재 안무가 트와일라 타프의 '여럿이 한 호흡'은 모두의 성공을 위한 협력 기술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야 말로 대통령을 비롯해 이건희 회장 등 각 분야 전문가들과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한 호흡으로' 성공한 명작(名作)이 아닐까.
도시 발전을 위해 지역 경계를 허물고 유연한 네트워크를 결성해 눈을 부릅뜨고 도시 경쟁력을 위해 브랜드 싸움을 펼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음악평론가 탁계석 회장은 경희대 음악대학과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 한국음악협회 부회장과 국립극장·세종문화회관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문화포럼 위원·경기도 문화예술전문위원·한류문화산업포럼 정책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 탁계석 (한국예술비평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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