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한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될 기회는 오직 한 번밖에 없다. 유네스코는 한 유산에 대한 세계유산 등재 심사를 두 번 이상 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등재 여부를 최종 판가름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각국의 등재 가능 여부를 면밀히 따져 해당 유산의 등재 가능성을 판단한다.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유네스코에 제출하는 등재 후보지 심사보고서는 이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가늠자가 된다.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유산에 등재되려면, 탁월한 보편적 가치성(Outstanding Universal Value·OUV), 진정성, 완전성, 비교유산 등을 증명해내는 일이 급선무다. 익산역사유적지구나 공주·부여역사유적지구 모두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는 게 핵심이다.
▲ 익산역사유적지구, 탁월한 보편적 가치는
익산역사유적지구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는 10개 항목 중 3개에 부합된다. '오랜 시간 동안 또는 세계의 어떤 문화지역 안에서 일어난 건축, 기술, 기념비적 예술, 도시계획 또는 조경 설계의 발전에 관한 인간적 가치의 중요한 교류를 보여줄 것','문화적 전통 또는 살아있거나 소멸된 문명에 관해 독보적이거나 적어도 특출한 증거가 있는 유산','인류 역사의 중요한 단계를 보여주는 건조물의 유형, 건축적 또는 기술적 총체, 또는 경관의 탁월한 사례' 등이다.
학계 전문가들은 익산역사유적지구가 백제 시대의 궁성, 사찰, 산성, 왕릉 등 고대 도성과 관련된 문화유산이 집중돼 있어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익산역사유적지구는 궁성과 정원 등이 조사된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 국가 사찰인 미륵사지(사적 제150호)와 제석사지(사적 제405호), 외세 침략을 막기 위해 건립된 익산 토성(사적 제92호) 등에 이르기까지 백제 유일의 도성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또한 중국 일본 등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백제의 국제성과 개방성을 나타내는 기념비적 자료라는 게 중론이다.
▲ 왕궁리 유적 정원, 고대 정원 건축양식 보여줘
사비 백제(536~660)의 또다른 수도 혹은 별도(別都)로 지목되는 익산 왕궁리 유적.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 이어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 중인 왕궁리 유적에서 대규모 수로(水路), 후원(後園·집 뒤에 있는 정원), 왕실과 연관된 공방지와 화장실 유구 등이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이 수로가 발견된 구릉지역을 궁성 내부 안쪽에 조성됐던 정원으로 봤다. 이는 구릉지 일부를 깎아 기암괴석, 장대석, 장자갈 등을 쌓아 성벽을 만들어 건물을 배치한 백제 최고의 정원으로 꼽힌다.
확인된 길이만 해도 228m나 되는 수로에는 구불구불한 곡선 형태로 모두 두 줄기가 확인됐다. 이 수로는 정원에 물을 공급했을 뿐만 아니라 정원을 잘 꾸미기 위한 조경 공간으로도 활용됐을 것이라 추정됐다. 고대 중국이나 일본의 정원은 물론이고 신라 포석정에서처럼 구불구불한 물길은 많이 확인됐으나 이렇게 구릉 전체를 이용한 대규모의 수로가 발견된 적은 없었다는 평가. 중국 동진시대부터 유행했고, 일본 헤이죠큐 정원 등에서도 보이는 구불구불한 물길을 중심으로 한 이 정원은 동아시아 고대 정원의 건축양식에 대한 비교연구가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 제석사지 폐기장, 무왕 익산 천도설 뒷받침
왕궁리 유적 북동쪽에 위치한 제석사지는 전형적인 백제 가람(伽藍·절)인 1탑1금당식 유적이다.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의 발굴로 이뤄진 제석사지 에서 발견된 폐기장 유적은 무왕이 익산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했다는 기록이 담긴 중국 육조시대의 문헌'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로 인한 '익산 천도설'을 재점화시킨 결정적인 근거다. '관세음응험기'에는 '백제 무강왕(무왕)대 지모밀지에 천도했으며, 새로이 정사를 경영했다. 정관 13년 기해에 재해(=벼락)가 나서 제석정사가 불에 탔다.'는 기록이 나온다. 다행스럽게도 제석사지 인근에서 제석사가 화재로 소실된 소위 쓰레기를 폐기한 장소가 발견 돼 여기에 신빙성을 뒷받침해줬다. 즉 제석사지와 제석사지 폐기장, 왕궁리 5층 석탑에서 발견된 금강경판 등은 당시 왕궁리 유적 인근에 제석사가 건립됐고, 그 절이 불에 타면서 뒷편에 화재 잔해물을 남긴 폐기장이 있었다는 사실로 연결된다. 때문에 이 기록에 나타난 '지모밀지(枳募蜜地) 천도설'에 대한 신빙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익산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최완규 위원장은 이를 두고 "'지모밀지'의 '지모(枳募)'는 오늘날 지명인 '금마(金馬)'와 같은 상하이 방언으로 'jin mou'로서 같은 발음"이라며 "그래서 백제 무왕이 오늘날 금마에 천도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