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후 7시30분 전주 경원동 창작소극장.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이거 입어봐, 스타일 난다.” 본격적인 연습에 앞서 좀 더 촌스럽게, 후줄근하게 보이기 위한 배우들의 변신이 시작. 홍석찬 창작극회 대표의 “정시 집합!” 불호령에도 불구하고 30분 후에야 배우들이 총집결, 연습이 시작됐다.
“스타예요, 스타! 초등학생들이 나중에 커서 얼굴 없는 천사처럼 되고 싶다고 하는디, 이것이 산교육 아니겠습니까? 산~교육!”
“우리 같이 없는 사람들을 돕는 사람인 게, 천사지. ‘짚이’ 알려고 하지 마러.”
연극은 ‘얼굴 없는 천사’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으로 시작된다. 창작극회의 ‘노송동 엔젤’은 2000년부터 전주 노송동 주민센터 인근에 돈을 놓고 가면서 신분을 밝히지 않은 인물을 다룬 창작 초연극. 얼굴 없는 천사의 실체를 밝혀 특종하려는 기자와 “천사의 뜻을 헤아려야 한다”면서 막는 동네 주민들과의 갈등이 엮어졌다. 주민들은 잠입한 기자의 취재를 끊임없이 방해하기 위해 거짓 제보를 던지고, 특종은 끝내 무산되고 만다. 언론의 조명을 받으려는 전직 시의원과 성금을 노리는 ‘어리버리한’ 도둑까지 등장해 재미를 더한다.
이날 30년 넘게 무대를 빛내준 이부열(동장 역)씨를 비롯해 박규현 신유철(도둑 역) 류가연(할머니 역) 송명옥(사회복지사 역)씨 등이 열연했다. 홍석천 대표는 배우들의 감칠맛 나는 입담, 실감나는 표정 연기, 동선 등을 위해 저녁까지 굶어가면서 자리를 지켰다. 조명으로 인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몰입한 연습은 밤 12시가 돼서야 마무리. 대본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 다들 쫓기듯 연습해 대사를 곧잘 까먹는 비상 상황엔 농익은 애드립이 대신해줬다. 동양화 그리는 김 원 김윤숙씨가 전주 노송동 일대를 무대 뒷 배경에 그려준 덕분에 극의 사실감은 더해졌다.
올해도 얼굴 없는 천사는 나타날까. 한때 지역 언론사에서 기부된 현금 다발을 묶은 띠지의 출처를 추적하면서 현금 다발이 고무줄로 변했고, 지난 2년간 성탄절을 보낸 뒤 한 해가 다 지나가도록 천사가 나타나지 않아 애를 태운 일도 있었다.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에게 살아갈 힘을 준다는 점에서 현실에서도, 연극에서도 ‘얼굴 없는 천사’를 만나는 행운을 누려보면 어떨까.
△ 창작극회,‘노송동 엔젤’(얼굴 없는 천사) = 9~25일 전주 경원동 창작소극장. 문의 063) 285-6111. changjak1961.co.kr 티켓 가격 1만5000원(일반) 1만원(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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