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극은 전통 연극처럼 '감정 이입'을 통한 대리만족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에 관객들에게 극이 제시하는 사건을 거리를 두고 관찰하여 판단을 내리도록 요구한다. 이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모순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동력으로 삼으라고 주문한다.
이번 공연은 어땠을까. 연출자의 기량과 숙련된 배우들의 연기력이 어우러져서, 좀 더 다듬으면, 공연 자체로서는 수준작의 반열에 오를 수도 있으리라 여겨진다.
'생각'은 '웃음'을 통해서, 웃음은 '거리감'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음악과 노래가 작품과 일정 정도 거리를 두고 극중 사건을 관찰하도록 해야 했으나, '감정 이입'까지 나아간 점이 아쉬웠다. 연기자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갖고 놀면서 유머러스한 상황들을 좀 더 많이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점도 2% 부족함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공연의 기술적 완성도 못지않게 중시해야 할 것이 있다면 작품의 본래 의도가 어느 정도까지 달성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극에서 말하는 '착한 여자'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점과도 연관된다.
대체 이 험한 세상의 아귀 다툼 같은 삶은 인간 탓이겠는가, 아니면 인간을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세상(사회) 탓이겠는가. '자신들이 만든 세상은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명분을 찾기 위해서 신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착하게 살면서도 물질적으로 크게 어려움 없이 인간다운 품위를 지키며 생활을 꾸려나가는 사람'이었다. 주인공인 착한 창녀 '선덕'에게 돈(자금)을 대줘 장사(사업)를 시킴으로써 단 한 명이라도 그런 사람을 세상에 존재하게 하려던 신들의 '실험'은 결국 실패로 끝이 났다. 신들이 만든 세상(당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목표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물론 작가의 본디 의도는 분명했지만) 작품에서 결론은 관객에게 맡겨진다. 왜냐하면 연극은 그저 문제를 제시할 뿐, 그 해결은 실제의 삶에서 얻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맨 마지막 장면에 한 연기자가 묻는다.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요? 세상, 또는 사람, 물질, 도덕성?" 내 옆에 앉은 중년여성은 낮지만 단호한 어조로 "도덕성!"이라고 답변했다.
절대 빈곤이 해소되었고, 권력을 제 손으로 선출할 수 있게 된 사회에서는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생존일까, 욕망일까. '고전들은 계속해서 '다시 읽혀야' 한다. 모든 해석은 자신의 시대에 좌우된다.'라는 말을 새겨들어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브레히트를 전공한 정초왕 교수는 전주시립극단 상임 연출과 창작극회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연극평론집'만남과 소통의 미학'을 출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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