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 관광객 시대를 앞두고 있는 전주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의 1순위 선호도는 한옥 체험이다. 현대 생활에 불편한 한옥을 굳이 찾는 이유는 아파트나 주상복합건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한옥에서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전주 한옥마을 내 한지길을 중심으로 저녁만 되면 인적이 드문 곳이 생겨나는 등 야간 도심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평당 2~3배 이상의 건축비를 들이고도 저녁만 되면 문을 닫아버리는 한옥 문화시설 활용도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요구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화, 경제로 읽다'에서는 한옥 문화시설들의 경제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 평당 건축비 2~3배 넘는 한옥 문화시설 밤이면 불꺼져
'한옥은 좁다, 춥다, 살기에 불편하다' 등의 이유로 우리 주거문화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던 한옥이 새로운 모습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은 해방 이후 중산층의 주거지로 전통에 기반을 둔 도시형 한옥촌으로 현재 1500~1800여 명의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 그 중 절반이 1930~1940년대 지어진 집들이다. 보존과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전주시와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한옥마을이 '전통문화특별지구'로 지정되면서 한옥마을 조성이 탄력을 받았다.
2002년부터 한옥마을 내 터줏대감 역할을 하고 있는 전주전통문화관, 한옥생활체험관, 전통술박물관, 공예품전시관을 비롯해 2004년 건립된 삼도헌, 2006년에 지어진 최명희문학관·청매헌(옛 아세헌), 2010년 가장 뒤늦게 자리 잡은 소리·부채·완판본 문화관은 전주시가 운영 중인 한옥 문화시설이다. 당시 건축비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들었다. 공연장·음식점 등을 갖춘 가장 큰 규모의 전통문화관은 147억1400만원, 공예품전시관 38억4700만원, 한옥생활체험관 20억8900만원, 전주전통술박물관 18억8900만원, 최명희문학관 16억4100만원이다. 일반 건물의 2~3배에 달하는 한옥의 평당 건축비에도 불구하고 한옥 문화시설을 지은 것은 전주 한옥마을의 상징성을 살리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계절과 자연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고 아득한 마당에서 여유를 즐기며 환경 친화적인 목조 구조물인 한옥이 더없이 소중한 문화자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한옥마을 내 야간 도심 공동화 현상이 생기고 있다. 음식점·커피숍 등 상업화 시설이 자꾸 들어서면서 이곳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빠져 나가는 일도 많거니와 은행로와 태조로 중심으로 한 번화가와 저녁만 되면 인적이 뜸한 한지길이 확연하게 대조를 이룬다. 문화공간으로 개조한 한옥의 경우 유독 추워 난방비를 걱정하는 문화시설의 경우 사무실을 아예 비워두거나 다른 장소로 옮기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다.
△ 한옥은 경관에 그칠 뿐, 한옥의 가치 전하는 일에는 소홀
그렇다면 한옥 문화공간은 제대로 활용되고 있을까. 전주 한옥마을에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것은 전국 최초로 민간 위탁을 도입한 한옥 문화시설들이 전통문화를 제대로 알리고 보급한 노력 덕분일 것이다. 물론 시가 한옥 민박을 육성하기 위해 내놓은 지원책 등도 한옥마을을 활성화하는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작 한옥마을이 한옥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문화재 보수 전문가 허만욱씨는 "전주 한옥마을의 한옥은 단순히 경관으로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한옥을 우수성을 자랑해야 하는 마당에 한옥이 멋있다는 말밖에 하지 않는다"면서 "어느 곳엘 가도 한옥의 숨은 이야기, 그 이면에 있는 삶의 철학을 설명해주는 이들이 거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여기에 시로부터 민간위탁을 받아 한옥 문화시설을 운영하는 곳들도 한옥 관리가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다. 한옥을 이루는 재료, 즉 나무와 돌·흙·종이(한지)가 시간이 흐르면 계속 손을 봐야 하는 수고로움이 요구되는 까닭이다. 실제로 전주한옥생활체험관은 지난해 굴뚝 아궁이가 갑작스레 무너져 빨리 수리해야 하는 상황이 됐으나 시가 이를 처리하려면 2개월이 넘게 걸린다고 하는 바람에 민간 위탁을 맡고 있는 (사)이음이 250만원을 넘게 주고 고치는 일도 있었다. 다른 문화공간과는 다르게 한옥 체험을 진행하는 시설의 경우 3년 단위로 갈라지는 구들장, 뒤틀려지는 창문, 낡아지는 툇마루 등은 앞으로도 계속되는 고민이다.
△ 전주시, 변화된 지형도 내 한옥 문화시설 역할 고민 없어
더 아쉬운 대목은 이처럼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간 한옥 문화시설의 새로운 활용 방안이다. 최근에 13~16억을 이상 건축비를 들여 건립한 소리·부채·완판본 문화관만 해도 오후 6~7시만 되면 문을 닫아 가동률이 낮은 상황. 더구나 각종 판소리 공연으로 북적거려야 할 소리문화관은 대관 신청 관련한 각종 민원에 휘말릴까 두려워 아예 전주문화재단이 진행하는 특별한 행사나 공연, 전시실을 제외하곤 문을 닫아걸고 있다. 야간엔 한옥마을에 볼 게 없다는 관광객들의 오랜 불만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에 올해 국립무형유산원과 한국전통문화전당까지 개관하면, 한옥 문화시설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두 공간에 마련될 전시·공연·체험장은 한옥마을에 위치한 일부 문화시설의 역할과 기능이 중복돼서다.
전주시는 이를 위해 한옥마을 문화시설을 총괄하는 전담 부서 '한옥마을 사업소'를 마련했다. 하지만 한옥마을 사업소는 민간위탁 문화시설의 보조금 지원·한옥 보존 등과 같은 하드웨어 관리만 할 뿐 소프트웨어를 고민하는 일은 해당 업무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정작 핵심 기능은 빠진 전담 부서와 전통문화과와 한스타일과가 서로 나몰라라 하다 보니 2년 째 똑같은 논의만 되풀이되는 상황. 전주시 문화정책의 중요한 축인 한옥마을 문화시설을 일부 민간위탁하고 있는 전주문화재단도 변화된 지형도에 맞는 한옥마을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고민의 필요성은 공감하면서도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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