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의 도시'라 자부하는 전북의 관립 문화예술단체는 어디쯤 와 있나. 그 지역의 문화 수준은 관립단체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도내 단체들은 지자체의 무관심으로 허울 좋은 이름만 남게 생겼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왜 이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관립 단체는 "단체장이 예술단을 외면하는데 누가 열심히 하고 싶겠느냐"고 하고, 행정은 "예술단 체질 개선을 위한 현안이 노조의 단체협상으로 묶여 해결이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지자체와 예술단이 상생의 답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하는 이유다. '관립 문화예술단체, 활로 찾기'에서는 전북도립국악원·전주시립예술단·전북도립미술관을 둘러싼 남은 과제를 정리한 뒤 일부 전문가 고견을 참고했다.
△ 순환직 공무원 원장의 리더십 부재가 현안 해결 어렵게 만들어= 회심의 승부수일까, 장고 끝의 악수(惡手)일까. 단원(23명) 충원 요구로 촉발된 전북도와 도립국악원 노조의 불협화음은 도의회 주도로 열린 국악원 활성화 토론회가 '조율 카드'가 됐다. 그러나 갈등의 불씨가 꺼진 건 아니다. 부지사급 공무원 수장을 전제로 한 예술감독제 도입부터 오디션 강화를 통한 예술단의 선순환 구조 조정까지 암초는 이곳저곳에 남아 있다.
두 차례의 국악원 활성화 토론회에서 나온 대강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절반의 합의'를 이룬 민간인 국악원장 대신 고위직 공무원 원장을 앉히되 예술감독제를 도입하자는 것. 노조는 옥상옥(屋上屋)을 우려해 예술감독제 도입을 반대하고 있으나, 문윤걸 예원예술대 교수는 "재단법인화 한 경기도립예술의전당의 예술감독제를 예로 들면서 인사·복무·행정 등 권한을 부여하고 책임을 매년 평가해 재위촉 여부를 반영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자"고 주장했다.
앞으로 전개될 뜨거운 감자는 오디션 강화를 통한 예술단 체질 개선 외에 교수실·공연기획실·학예연구실 등의 역할 점검이다. 일각에서는 "선순환 구조를 고민하면서 20명이나 되는 교수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관한 고민은 왜 없었느냐"고 지적하고 있으나, 도가 2011년 노조의 동의 없는 예술단·교수실 교류 인사로 노동위원회에 패소했던 경험을 감안할 때 쉽사리 합의를 이루기 어려운 카드 같다. 전국 최초로 설치·운영 돼 모범 사례로 평가받은 학예연구실의 연구기능이 미흡하다는 지적과 관련해서도 문화계는 공연기획실·학예연구실 통합을 제시하고 있으나 노조가 이를 받아들일지 미지수다. 도와 도의회, 노조의 '불편한 동거'가 서로가 원하는 '당근'을 얼만큼 갖고 마침표를 찍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 차별적인 기획력·마케팅 뒷받침되는 전담팀 요구 돼= 도립국악원 보다 속이 더 탔던 쪽은 전주시립예술단이었을 것이다. 지난해 예술단이 몇 년의 노력 끝에 오디션 강화 등을 위한 조례 개정을 추진했다가 담당 공무원들의 인사 이동으로 없던 일이 되면서다. 전문성이 취약한 공무원 순환 인사는 예술단을 쥐락펴락하며 갈등을 심화시키기도 했다. 지난해 전임 공무원이 안팎의 불만을 산 전임 합창단 지휘자의 재임용에 앞서 단원들에게 의사를 묻는 찬반 투표는 공무원이 지휘자 임용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안좋은 선례를 남겼다.
그럼에도 전주시는 시립예술단 예산 줄이기에만 관심을 두는 것처럼 보인다. 시가 올해 예술단의 공연 예산이 적으니 정기·기획 공연을 줄이라는 지침 역시 예술단 체질 개선과는 거리가 있는 것.
지역 문화계는 시립예술단의 경쟁력 있는 기획력과 마케팅이 뒷받침되는 공연을 위해 전문성을 담보한 기획홍보팀을 요구하고 있다. 티켓가격이 싸긴 해도 유료공연을 해온 시립예술단의 홍보가 취약하다는 지적을 감안한 판단. 공연의 브랜드를 인정받은 수원·인천시립예술단이나 대전시립교향악단의 경우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기획홍보팀·공연기획팀이 있거나 예술경영을 전공한 마케팅 담당자를 별도로 두고 공연 기획, 홍보, 유료 회원 관리까지 하고 있어서다.
전국적으로 낮은 수준에 속하는 전주시립예술단의 처우를 강화시키되 단원들의 옥석을 가려낼 다각도의 고민도 요구되고 있다. 은희천 전주대 교수는 "잘하는 단원들에게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을 고민하라"고 조언했다. 워크숍이나 연수제 등을 적극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 내년 10주년 도립미술관 '초상전문미술관' 특성화 등 정체성 고민해야= 아마도 전북도립미술관에서 가장 바쁘게 일하는 사람은 이흥재 관장일 것이다. 학예사가 4명 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외부 전시기획자를 수혈하고, 문턱 낮춘 미술관을 위해 프로그램을 내놓는 일까지 팔을 걷어부친 결과다. 하지만 5급 상당 계약직(최대 5년)이라는 관장의 신분은 결국 행정의 눈치만 봐야 하는 정치적 자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북도도 이같은 점을 감안해 관장의 직급을 올리는 방식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내년 개관 10주년을 맞는 도립미술관은 앞으로 어떤 경쟁력을 가져야 할까. 최근에 도립미술관 세미나에서 윤범모 가천대 교수가 제안한 국립초상화미술관 건립 제안은 밖에서 바라보는 도립미술관의 경쟁력과도 일맥상통했다. 지난해 호평을 받은 '채용신과 한국의 초상미술'展이나 태조 어진이 보관된 어진박물관으로 인해 전북이 초상화 전통이 강한 것으로 비춰져 도립미술관이 '초상전문미술관'으로 특성화해도 무방하다는 것.
스타 작가를 발굴하기 위한 창작스튜디오 건립도 도립미술관이 안고 가야할 역할 중 하나다. 이흥재 관장은 "앞으로 도립미술관이 가나아트센터가 운영 중인 장흥아뜰리에와 프랑스의 시떼의 일부 공간을 확보해 도내 작가들이 '스타 작가'로 발돋움 하도록 힘을 보태고 싶다"고 피력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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