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에서 실감나는 역사 강의까지 들으니, 제가 그 시대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전주역사박물관의 4번째 답사 ‘태조 이성계의 발자취를 따라 -황산대첩과 피바위’.
하태규 전북대 사학과 교수가 강사로 나선 지난22일 답사에 40여명이 참여, 600여년 전 역사와 마주했다.
“우리가 전쟁사(史) 현장을 보는 목적은 다시는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우리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현장에 답사를 갑니다”
오후 2시 남원에 있는 황산대첩 유적지를 가는 버스 안. 하 교수는 이날 역사현장 답사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강의는 고려 말의 시대적 배경, 이성계가 왜구를 토벌하고 황산대첩을 이루기까지의 과정, 왜구 출몰 현황 등 역사적 사실들을 설명하는 것으로 참석자들의 현장에 대한 사전 기본 지식을 넓히게 했다.
답사는 고려 말과 조선 임진왜란시기의 방어성 ‘남원산성(교룡산성)’, 이성계의 전투와 관련된 불교적 설화가 녹아있는 ‘여원치 마애불’, 왜구 장수 아지발도(阿只拔都)가 죽으며 흘린 피가 물들었다는 ‘피바위’ 조선 선조 때 황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황산대첩비지’ 등으로 이어졌다.
답사 현장은 전체적으로 온전히 보존돼 시민들에게 당대의 역사를 잘 전달하는 곳도 있지만, 일제가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지우기 위해 철정으로 지워버린 곳도 있어 안타까움이 전해졌다. 실제 황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황산대첩비(조선 선조 10년·1577년)와 어휘각(御諱閣, 고종 19년·1882년)은 비석이 깨지고 기록이 훼손돼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시민들은 한참 동안 현장을 쳐다보며 안타까워했다.
하태규 교수는 일제가 조선인에게 식민사관을 주입하기 위해 이런 만행을 저질렀다고 설명하면서, “역사 현장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만 해석하면 안 된다.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 고 했다.
이날 답사에서는 황산대첩뿐 아니라 답사 현장과 관련된 정유재란, 동학농민혁명 등 통시대적인 역사이야기, <고려사> 와 <조선왕조실록> 등 관련기록도 소개됐다. 또 재미를 위해 야사(野史)와 전통설화도 곁들이고, 창극의 화자처럼 ‘구수한 설명’과 몸짓으로 설명을 이어가 참가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하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참가자들은 역사의 현장을 보면서 궁금한 점이 떠오르면 바로바로 하 교수에게 물었고, 현장강의가 끝난 후 이동하는 중에도 질문세례는 이어졌다. 어떤 이들은 본인이 알고 있는 지식과 새롭게 알게 된 지식을 비교하기도 했다.
답사에 참석한 전북대학교 사학과 학생 김진영·공정아 씨(22)는 “학교 수업때 배웠던 것을 복습하는 자리 같아서 유익했다”며 “수업때와 마찬가지로 교수님께서 ‘온몸을 활용하시는’열강을 펼쳐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번 위봉산성 답사에 이어 참가한 유옥선 씨(41)는 “고려말 황산대첩의 역사와 조선 중기의 전쟁사까지 알게 돼 유익한 경험이었다”고 보탰다.
답사현장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하태규 교수는 “대중과 공감할 수 있는 역사강연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역사는 가장 쉽고 상식적인 선에서 해석되고 설명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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