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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광양회

불필요한 마찰 줄이고 국력이 생기기 전까지 몸을 낮추는 전략 필요

▲ 신상훈 성균관대 초빙교수

정서적으로 극일, 문화적으로는 우월감, 경제적으로는 아직 배울 점이 많은 선진국 등으로 일본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자세는 여러 각도로 나뉜다. 하지만 이런 모든 요소들을 종합하여 단순화한 국가간 격차의 시계는 얼마의 차이가 있었고 지금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지 싶다.

 

1896년 고종황제의 특명 전권대사로 임명된 민영환의 기행문 ‘해천추범(海天秋帆)’을 보면 당시의 정치적 격변과 문화적 충격을 몸소 체험한, 우리의 눈으로 바라본 최초의 세계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다. 그 중 러시아 황제 리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고 모스크바 궁중연회에서 겪은 문화적 충격을 잠시 살펴 보자. 양식 대접을 받으면서 “동방 예의지국에서 온 양반네 잔치 상에 웬 쇠스랑(포크)과 장도(나이프)인가. 입술이 찢기지 않으면서 접시의 물건을 입에 넣는다는 것이 참 고역이로구나”라는 표현이 있다. 또 발레 공연을 보면서 “가녀린 낭자를 저렇게 학대하다니 서양 군자들은 참으로 짐승이로구나”에서도 문화적 충격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1854년 미국과 가나가와 조약을 맺으면서 개항을 했고 조선은 1876년 일본과 강화도 조약으로 나라의 문을 열었다. 조선은 일본에 개항을 기점으로 당시 기준으로 사회혁신에 있어 20여년정도 뒤쳐졌다 평가된다. 조선이 1881년 소규모의 신사 유람단을 보낼 때 일본은 이미 10년전인 1871년부터 이와쿠라 사절단이라 하여 200여명의 정부 핵심 요원들을 그 가족과 함께 그것도 2년여씩 해외에 보낼 정도로 선진 문물을 익히고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이었다.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여 3등국 반열에,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이겨 2등국 반열에 오르며 1905년 을사조약을 맺고 1910년엔 조선을 병합하게 된다. 이어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하여 1등국 반열에 올랐다. 1941년엔 진주만을 공격할 정도로 근대강국으로 올라선다. 1854년 개항으로부터 50년만에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불과 100년도 안 되는 사이에 군함 항공모함 전투기를 생산할 정도로 발전 하였다. 쇄국으로 일관한 조선과 개혁 개방으로 근대화에 열심이었던 일본과의 차이가 20년에서 시작하여 얼마나 벌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반면에 청일전쟁 패배로 청조가 무너지고 서구열방에 시달리던 중국은 근대화의 선구자 등소평은 도광양회(韜光養晦)를 외쳤다. 중국이 최빈국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미국과 대등한 실력을 갖출 때까지 몸을 낮추고 힘을 길르기 위한 최우선 정책이었다. 중국이 오늘의 G2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유훈을 철저히 지킨 데 있다. 이후 후진타오 세대에 들어 유소작위(有所作爲), 시진평 시대에 들어 화평굴기(和平 起)를 내세우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일본과 외교 안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근본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즉 일본의 경제, 안보 외교 정책은 한국에도 유용한 점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98년전 민족의 독립을 만방에 외쳤던 3월을 맞아 일본에 대한 저항적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감정을 앞세운 대일 자세가 우세한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구한말 비운의 역사를 되돌아 보며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면서 대등한 힘을 기를 때까지는 등소평의 도광양회를 품고 우리의 국제적 지위를 높이는데 더 한층 분발하는 것이 필요한 3월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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