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5일은 저에게 조금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33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는 퇴임식이 그날 있었거든요. 퇴임사를 준비하면서 동료들에게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였습니다.
지나온 공직생활을 되돌아보며 앞으로도 많은 시간을 공직에서 지낼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경찰 간부후보 출신으로 평생 육지경찰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해양경찰청이 세월호참사로 해체되고 그 후속으로 신설된 해양경비안전본부의 초대(初代) 본부장으로 해양경찰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국민들은 물론이지만 해양경찰에게도 그 사건은 짙은 트라우마로 남아 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꺾인 상태였습니다.
저는 취임 초부터 해양경찰에게는 ‘국민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였고, 국민의 신뢰 회복에 모든 정책의 주안점을 두고 전 직원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다행히 새 정부에서 해양경찰청이 독립 외청(外廳)으로 다시 부활하게 되면서 저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본부장’의 역할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퇴임사에서 평소 존경하는 이순신장군의 말씀을 인용하게 되었습니다.
선조 26년인 1593년 7월, 이순신장군은 왜적들이 호남을 돌아 한양으로 가는 바닷길을 차단하기 위해 한산도로 진을 옮긴 다음 사헌부 관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고 말하였습니다. 장군은 ‘호남은 나라의 울타리이므로 만약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을 것이다’라고 하여 왜적을 막기 위해서는 곡창지대인 호남의 방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였습니다.
저는 이순신장군의 말을 조금 바꿔 ‘약무신뢰 시무해경(若無信賴 是無海警)’, 즉 국민의 신뢰가 없으면 해양경찰도 존재의 의미가 없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 어떤 국가조직보다도 충성심과 강인한 성품을 가진 해양경찰이라도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뿌리부터 그 존재의 의의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약무해경 시무안전(若無海警 是無安全)’, 즉 해양경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바다에서의 국민의 안전은 담보할 수 없습니다. 지금보다 더욱 더 업무를 돌아보고 미비한 점을 개선하여 바다에서의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는데 조금의 빈틈도 있어서는 안 됨을 후배들에게 당부하였습니다.
퇴임사의 마지막은 고은 시인의 ‘그 꽃’이라는 짧은 시를 인용하였습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바쁘게 올라가는 삶만 살다보니 미처 보지 못했던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 무심히 지나쳐버린 직원들과의 추억들, 부주의하게 내뱉은 말 한마디에 상처받았을 사람들의 마음까지 왜 그런 것들을 올라갈 때는 보지 못했는지 아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천천히 내려가면서 주변을 돌아보고 세세히 보듬어 안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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