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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시대의 뇌물과 선물 구별법

께름칙한 선물 돌려주고 발뻗고 편히 자는 게 최선 / 소탐대실은 빈말 아니다

▲ 윤승용 서울시 중부기술교육원 원장

가을이 성큼 눈앞에 다가왔다. 우리 조상님네들이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했던 으뜸 명절추석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명절은 누구나가 기다리는 세시풍속(歲時風俗)이지만 공무원들은 남모를 고민에 빠지곤 한다. 한때는 미풍양속으로 불렸던 명절 선물 때문이다. 특히 2016년 ‘김영란법’이라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이후엔 공무원 사회에는 선물 노이로제로 인한 명절증후군이 새롭게 등장했다. 더구나 올해의 경우엔 유난히 공직자의 도덕성을 강조하는 새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맞는 명절이어서 더더욱 그러할 것으로 짐작된다.

 

김영란법의 적용대상은 공무원뿐 아니라 공직유관단체 임직원, 교직원, 언론인과 배우자까지 합하면 거의 400여 만명에 이른다.

 

김영란법은 여검사가 남자 변호사로부터 사건청탁을 대가로 벤츠 자동차를 선물로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른바 ‘벤츠 검사 사건’에서 관련자들이 재판에서 서로 내연관계에 있는 사람들끼리 주고받은 선물일 뿐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은 것을 계기로 제정됐다.

 

이 법안은 복잡한 듯 보이지만 골자는 3, 5, 10이란 세 숫자와 대가성이란 개념만 알면 간단히 이해할 수 있다. 즉 공직자 등 적용대상자는 음식물은 3만원, 금전 및 음식물을 제외한 선물은 5만원, 축의금 조의금 등 부조금과 화환을 포함한 경조사비는 10만원을 넘으면 안 되고, 대가성이 인정되는 경우엔 이 상한액을 넘어서면 처벌받는다는 게 골자다.

 

공직자의 경우 과거 뇌물죄 등을 규정한 형법 외에 대통령령으로 제정된 ‘공무원 행동강령’에 의해 평소의 행동기준이 규정돼 있었지만 이처럼 김영란법이라는 새로운 규율이 추가되면서 적용 대상자들은 평소는 물론이고 명절 때면 자신이 받은 금품이 과연 통상적 의미의 선물인지, 아니면 이를 넘어선 뇌물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선물과 뇌물의 차이에 대한 논란은 많은 논쟁이 있었다. 인류학자 나탈리 데이비스는 <선물의 역사> 라는 책에서 중세 서구사회의 선물에 얽힌 예화를 소개하면서 선물이란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장치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경계선을 확인하고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분석하고 다양한 사례분석을 통해 단순명쾌한 결론을 내린다. 선물에는 고도의 전략이 숨어있고, 의미없는 선물은 없다는 것.

 

법조계 주변에선 ‘대가성 없는 금품은 없다’는 말이 회자된다. 즉 공짜 선물은 없다는 것이다. 수사관들은 이를 빗대 “소금 먹으면 물을 마시게 돼 있다”고 한다. 즉 소금(선물 혹은 뇌물)을 먹으면 물을 들이키듯 반드시 이에 대한 보상을 해주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범죄자를 상대하는 수사관들의 특수한 경험칙에서 나온 것이지 세상의 모든 선의의 선물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가오는 한가위 명절. 혹시라도 받은 물건이 선물인지, 뇌물인지 구별이 어려울 때면 영국의 기업윤리연구소(IBE)가 정의한 둘 사이의 세가지 차이점을 염두에 두면 그리 고민할 일이 없을 것이다.

 

IBE에 따르면 첫째, 물건을 받고 잠을 잘못이루면 뇌물이고 발 뻗고 잘 자면 선물, 둘째, 언론에 드러나서 문제가 되는 것은 뇌물, 문제가 안 되는 것은 선물, 셋째, 자리를 옮겨가면 못 받는 것은 뇌물, 바꾸어도 받을 수 있는 것은 선물이라고 한다. 다소 께름칙한 선물이라면 반품하고 발을 쭉 뻗고 편하게 자는 게 건강뿐 아니라 명예를 보전하기에도 최선이다. 소탐대실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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