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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주인공

2016년 초가을, 한 여성이 앳된 남자아이를 데리고 목가구 공방을 찾았다. 여성은 인문계 고등학교 1학년생인 A군의 어머니였다. 학생은 눈이 크고 총명스러워 보였는데, 알고보니 ‘공부’를 하지 않고 방황하는 ‘소위’ 문제아였다. 대학공부까지는 시키겠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부모 심정이다. 부모 자식간 갈등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어머니가 A군 손을 잡고 ‘공부’와 동떨어진 공방을 찾을 수 밖에 없었던 건 아이가 ‘목가구 배우는 것이라면 열심히 할 수 있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억지 춘향은 없는 법이다.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끌리면 오라’는 광고 카피도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악조건이고, 연목구어같은 일이었다. 그는 특성화고도 아닌 인문계 학생이었다. 그의 학교에서는 ‘공부’만 요구할 것이고, ‘기능 습득’을 위한 어떠한 지원도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더욱 조건이 좋지 않은 것은 교통이다. 학교 근처에 거주하는 아이가 집에서 직선거리로 20㎞ 이상 떨어진 공방에 다니며 목가구 기능을 습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나와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2시간 가량 걸려 공방에 도달할 수 있다. 방과후 공방에 가더라도 그가 밤 10시 전후까지 기능 습득에 쓸 수 있는 시간은 3시간 안팎이다. 시내버스 타고 귀가하면 씻고 잠잘 시간이다. 공방 일은 노동이다. 힘든 작업을 마치고 자정께 귀가한 A군은 먼지와 땀으로 뒤덮인 몸을 씻고 잠자기 바쁠 것이다.

 

공방은 깨끗한 교실이 아니다. 먼지 투성이고, 날카로운 끌과 톱, 대패 그리고 망치 등 수공구로 인한 부상 위험이 노출돼 있다. 전동공구에 다치면 장애를 입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목가구 기능을 배우겠다고 했다. 아마 부모는 아이가 공방의 어지럽고, 또 힘들어 보이는 작업 환경 등에 질려 포기할 것이라고, 공부로 돌아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몇 개월 못버틸 것이라고 봤을 것이다.

 

부모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고, A군은 전통목가구 장인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지난 4월9일 열린 전북기능경기대회 목가구부문 시상식에서 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이의 얼굴에 모처럼 환한 웃음이 번졌다. 인문계 학생인 탓에 연습량이 절대 부족했지만, 탄탄한 기초를 바탕으로 거둔 작은 결실이다. 전국대회, 나아가 국제기능올림픽을 향한 출발이다.

 

인문계든 실업계든 학교와 교사는 학생을 위해 존재한다. 학교의 주인인 학생이 진정 무슨 꿈을 꾸고 있는가 끊임없이 파악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게 미래 동량을 제대로 세우는 교육백년대계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김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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