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맛의 고장, 음식의 고장은 전주다. 오래전부터 전주는 맛의 도시, ‘음식의 수도’로 통했다.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전주’라는 지명이 붙은 음식점 상호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지난 2012년에는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로 선정되면서 한국음식의 세계화를 이끌게 됐다. 대한민국 음식수도에 그치지 않고 세계무대에서 커다란 상징성을 갖게 된 것이다. K-푸드의 가치와 다양성을 세계에 알려야 하는 막중한 책무도 주어졌다.
겨울의 길목, 김장철이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한국의 대표음식을 하나 꼽는다면 역시 김치다. K-푸드의 상징이고, 우리민족이 자랑해온 전통 발효식품의 대명사다. 단순한 음식을 넘어 우리 문화와 역사를 담고 있는 소중한 유산으로, 한국인의 식생활과 정체성을 대변한다. 지난 2013년에는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다시 한번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후 우리 정부는 2020년 법정기념일로 ‘김치의 날(11월 22일)’까지 제정했다.
그런데 전주에서 가장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음식이 바로 ‘김치’다. 전통문화도시, 가장 한국적인 도시, 대한민국 음식수도임을 자부하지만 정작 한국의 대표음식인 김치를 내세우는 일이 없다.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음식, 김치와 연관되는 도시를 꼽을 때 전주는 의외로 이름을 올리지 못한다. 이름난 음식축제가 이어지고, 20년 넘게 ‘전주 국제발효식품엑스포’를 열면서 ‘대한민국 발효식품의 메카’라고 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이 도시에서 발효식품을 대표하는 김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일찌감치 대규모 김치축제를 열면서 김치타운과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세계김치연구소까지 두고 ‘김치 종주도시’, ‘김치 세계화’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광주가 전라도 김치, 한국 김치의 명성을 오롯이 차지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음식 세계화’의 선봉에 있는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 전주가 세계인이 열광하는 K-푸드의 상징, ‘김치·김장문화 계승·발전’의 임무를 다른 도시에 맡겨놓고 방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지자체의 행보가 영 마뜩지 않다. 전주에서도 해마다 김치의 날 즈음에 김장문화축제를 열고 있지만 광주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게다가 올 전주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는 ‘전주 김치산업관’ 부실운영 문제가 도마위에 올랐다. 전주만의 명품 김치 레시피 개발과 제조업체·창업자 지원을 위해 85억원의 예산을 들여 2022년 준공한 후 설립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장기간 방치되다가 공유주방 형태로 개관했지만 이 역할마저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천년의 숨결을 간직한 전통문화도시, 대한민국 음식의 본고장이다. 다른 지역에서 맛볼 수 없는 매력적인 ‘전주 김치’의 전통과 비결이 없을 리 없다. 세계적인 음식관광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비빔밥만큼 김치에도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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