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기록문화의 꽃’으로 꼽히는 <외규장각 의궤>가 고국 땅에 돌아온 것은 2011년이다.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있던 외규장각에서 의궤를 약탈해간 것이 1866년 10월이니 꼭 145년 만의 귀환이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일했던 박병선 박사가 의궤의 존재를 확인한 것은 1978년 10월. 그러나 프랑스와 우리나라 사이 반환 협상이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 10여 년이 더 지난 1992년이었다. 의궤는 오랜 시간 진통을 겪고서야 돌아왔다. 그것도 온전한 귀환이 아니라 장기 임대 형식이었다.
지난 15일 국립중앙박물관에 외규장각 의궤만을 위한 전용 공간 '외규장각 의궤실'이 문을 열었다. 초록색 비단으로 만든 의궤 표지 ‘책의(冊衣·책이 입는 옷)’를 디지털로 구현하고 어람용 의궤를 관람할 수 있는 상설전시실을 갖춘 ‘왕의 서고’다.
의궤는 조선시대 국가나 왕실의 중요한 의식과 행사의 준비와 진행 과정, 의례의 절차, 소요된 경비, 참가 인원, 포상 내용 등 그 모든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일종의 종합보고서다. 필요에 따라서는 그림을 함께 그려 넣어 이해를 도왔으니 후대에까지 제대로 전하려는 의지가 얼마나 철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의궤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대부터 순종이 작고한 1926년까지 꾸준히 제작됐다. '예치(禮治)와 문치(文治)'를 근간으로 했던 조선시대의 국가 통치 철학과 운영체계를 온전히 만날 수 있는 기록이 의궤인 셈이다. 의궤는 기록물로서의 이런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됐다.
조선시대 주요 국가기록물은 같은 내용이 왕의 열람을 위한 어람용과 보관하기 위한 분상용으로 구분되어 제작됐다. 외규장각 의궤도 전체 297책 중 어람용 의궤는 290책이다. 비단 표지와 고운 종이, 숙련된 제본과 장식으로 제작된 어람용 의궤는 당대 최고의 도서 수준과 예술적 품격으로도 가치를 빛낸다.
1776년, 왕실도서관이자 학술과 정책 연구기관인 규장각을 설치했던 정조는 6년 뒤, 강화도에 외규장각을 따로 설치했다. 규장각에 보관하고 있던 자료 중에서도 왕실의 주요 물품과 도서를 보다 체계적이고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번잡한 시절이다. ‘대통령 내외 공천 개입 의혹’이 몰고 온 파장이 심상치 않다. 점입가경, 또 다른 의혹의 실체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선거 브로커에 휘둘려온 정치판의 현실은 참담하다.
이런 시절에 새롭게 만나게 된 외규장각 의궤의 존재. ‘예로써 국가를 다스리고, 질서를 지켜 조화로운 나라를 세우려던 조선의 통치이념’을 후대에 전하는 외규장각 의궤가 우리에게 전하는 의미가 새삼스럽다. 우리는 언제쯤 품격있는 정치를 볼 수 있을까. /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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