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번에는 뒤통수를 더 단단히 맞은 격이다.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일본 사도광산의 연례 추도식이 반쪽짜리 된 사연이다.
사도광산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노동자들이 강제 동원되어 노역했던 현장이다. 사도광산의 등재는 역시 조선인 노동자 수백 명이 강제 동원되어 희생됐던 군함도에 이어 두 번째다. 군함도보다 더 많은 조선인 노동자가 강제 동원됐고, 그만큼 희생도 더 컸던 사도광산 등재는 큰 논란을 불렀다. 피해 당사국인 우리나라는 군함도와 사도광산 등재를 반대해왔지만, 정작 한국을 포함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전원 동의로 등재가 결정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군함도와 사도광산의 등재 과정을 알게 되면 참담함은 더 깊어진다.
군함도는 등재될 당시 ‘조선인의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 적시’가 조건이었지만 일본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사도광산 등재 때는 보란 듯이 ‘강제 동원의 강제성’을 뺐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등재에 동의했다. 국민의 반발과 비판이 일자 정부는 ‘전체역사를 알리는 시설물 설치를 성실히 이행하고, 이를 위한 선제적 조치를 취할 것을 전제로 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그 약속은 지켜졌을까. 당연히(?) 그럴 리 없다. 일본 정부가 답한 ‘선제적 조치’는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와 관련한 전시관 설치. 그러나 전시실 안 어디에도 강제 동원의 ‘강제성’은 담기지 않았다. 역사적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꼼수가 그대로 드러났지만, 우리 정부는 ‘진전된 선제적 조치를 끌어낸 점에 의미가 있다’며 사태를 관망했었다.
그리고 1년, 등재 당시 일본이 약속했던 '연례 추도식'을 앞두고 갈등이 불거졌다. 자신만만하던 우리 정부의 외교력도 한계를 맞은 모양새다. 정부는 추도식을 하루 앞둔 지난 23일에서야 “외교 당국 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다"며 불참을 통고했다. 이쯤 되면 이견의 내용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들여다보니 추도식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이 있는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 참석과 추도사에 강제 동원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를 담아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요구를 무시한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지난 24일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은 반쪽이 되고 우리 정부는 이미 현장에 가 있던 피해 유족들과 별도의 추도식을 치렀다.
사실 이러한 참담한 상황을 한 두 번 겪은 것도 아니니 군함도와 사도광산까지 이어지는 일본 정부의 약속 폐기는 이제 그리 놀랍지도 않다. 일본 정부가 앞장서 벌이는 끝없는 역사 왜곡의 징후에도 넓은 아량(?)과 어쭙잖은 논리로 양보 해온 우리 정부의 무기력함이 한탄스러울 뿐. /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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