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하락세가 가속화되고 있다. 인류에게 결혼과 새 생명의 탄생은 가장 축복받을 일이다. 인간이 종(種)으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결혼과 출산이 계속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종족보존이라는 릴레이의 바통을 다음 세대에 건네주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현상은 그저 단순히 경제활동인구의 감소나 국가경쟁력의 저하 차원으로만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공동체의 존속을 위협하는 심각한 적신호이다.
예전보다 지금 잘 먹고 잘 살고 있지만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는 것은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그 고통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아이를 낳는 것도 꺼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지수가 낮은 사회는 출산율도 낮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행복지수가 낮은 데는 매우 복합적인 원인들이 작용하고 있다. 빈부격차의 심화는 그 중 하나이다. 양극화 현상은 국가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중차대한 문제지만 현실적으로 단기간내에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여기에서 사람들의 행복감은 객관적 여건 못지않게 주관적인 태도와 반응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행복지수가 줄어든 데는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과도한 경쟁문화의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특유의 성공지향문화, 빨리빨리 문화가 경제적 풍요를 가져왔지만, 한편으로는 바로 그것이 사회전반적으로 과도한 경쟁문화를 고착화시키면서 오히려 삶의 재미와 행복을 깎아 먹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먹고 살기 위해 시작된 경쟁이 이제는 그저 남을 꺾고 이기기 위한 경쟁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론에서 과도한 경쟁이 출산율을 저하시키는 주범이라고 갈파하였다. 사람들은 경쟁을 하면서 내일 아침을 먹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옆 사람을 뛰어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게 되고, 그럴수록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자녀를 낳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경쟁을 없애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과도한 경쟁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의 말처럼 “제때의 한 바늘이 나중에 아홉 바늘의 수고를 막아준다고 하면서 오늘 천 바늘을 꿰매는”일이 매일 반복되어서는 행복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소수의 사람들이 성취한 수준을 마치 모두가 이뤄야 할 삶의 표준인 것처럼 제시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과연 자신의 삶에 얼마만큼 행복하고 만족할지는 정작 모르는 일이다. 행복은 재산순, 출세순,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경쟁 자체를 위한 경쟁은 끝이 없다. 경쟁에 뒤쳐진 나를 자책하고 다그친다. 그러다 선두에 서면 선두를 놓치지 않으려고 또 경쟁한다. 그러니 행복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아이들이 그러한 경쟁의 쳇바퀴에 갇혀 있는 신세가 되기를 어느 부모가 바라겠는가.
물론 한 사람 한 사람의 결단과 노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은 사회적 시선과 분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의 문화와 분위기를 바꾸어야 한다. 교육과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 선의의 경쟁은 권장하지만 경쟁 그 자체를 위한 경쟁은 행복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집단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나”로 살 수 있고,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다.
/김희관 전 법무연수원장·광주고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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