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는 5천여 명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독립선언서는 민족대표 33인의 서명을 받아 약 2만여 장이 인쇄, 전국에 배포되었다. 그해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는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은 민주공화제 임시정부가 출범하였다.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에 힘입어, 일제의 패망은 1945년 8월 15일 대한의 자주독립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1997년 12월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았다. 기업 부도, 금융기관 부실, 치솟는 실업과 환율 등 나라 경제가 빈사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우리는 금 모으기 운동을 비롯한 국민들의 땀과 희생을 바탕으로 빠른 시간 내에 위기를 극복해냈다. 노사정이 힘을 합쳐 경제구조 개혁에 매진한 결과, 경제 체질(fundamental)을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할 수 있었다.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10년 전과 달리 대응역량이 있었다. 역대 최대의 추가경정예산과 확장적 통화정책, 한미 통화스와프 등의 조치를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했다. 2012년 우리나라는 사상 최고의 국가 신용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우리 사회는 일본의 수출제한조치로 뜨겁다. 일본은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서,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3개 품목의 수출규제를 시행하고 우리나라를 백색국가(white list)에서 배제하였다. 일본 정부의 의도적이고 치밀한 경제보복은 온 국민의 우려와 공분을 사고 있다.
역사의 교훈은 자명하다.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오히려 이를 도약하는 기회로 만들어낸 저력이 있다. 정부와 국회는 비상체제다.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주요품목의 물량 확보와 대체 수입처 모색, 예산·세제·금융 지원 등 가용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우리 경제의 대일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소재·부품·장비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 대책을 발표하였다.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한 단계 도약시킴으로써 다시는 일본의 기술 패권에 휘둘리지 않고 명실상부한 제조업 강국으로 거듭난다는 계획이다.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화합을 다지는 것만큼 긴요한 일은 없다. 1919년 3월 1일에는 직업의 귀천, 종교의 차이, 남녀의 구분 없이 국내외 온 민족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1997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무려 350만 명의 국민들이 226톤의 금을 선뜻 내놓았다. 이번 위기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와 사, 그리고 국민들이 함께 힘을 모은다면 충분히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오늘은 광복절이다. 광복이란 “영예롭게 회복”한다는 뜻이다. 우리 경제·사회가 화합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일본 경제를 뛰어넘을 수 있다면 그만한 광복이 또 있을까. 대한민국이 일본의 기술 패권을 극복하여 자유무역 질서를 수호하고 세계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하는 모범국가로 우뚝 서는 날이 온다면, 그날은 비로소 광복이 완성되는 날이 아닐까. 광복절을 맞이하여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의 외침을 음미해보자.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지 남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중략)... 일본이 잘못된 길에서 빠져나와 ...(중략)... 책임을 다하게 하는 것이다.”
- 3·1독립선언서 중에서
/ 이인재 행정안전부 기획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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