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초월한 대 문호 셰익스피어는 한 때 영국 런던의 글로브 극장을 운영하는 사업가이기도 했다.
자신의 작품을 공연했던 글로브 극장은 관객석이 3000석 정도로 국왕 내외가 공연을 보러 오는 큰 규모의 극장이었으나 갑자기 화재로 소실되게 된다. 이 일이 있고난 뒤 셰익스피어는 다시는 희곡을 쓰지 않았으며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셰익스피어가 쓴 시에는 이때의 감정을 엿볼 수 있는 문구가 있다. “한 여름의 열기도 더 이상 두려워 말라, 휘몰아치는 사나운 겨울의 폭풍도 또한 두려워 말라. 그대는 이 세상의 과업을 다 끝냈도다. 집으로 돌아왔도다. 품삯도 받았도다.” 셰익스피어가 긴 인생의 항로를 끝내고 고향 집으로 돌아와 편안해진 감정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셰익스피어는 고향 사람들에게 환대를 받은 것만은 아니어서 조롱과 비난에 휩싸였으며, 엄청나게 애정을 쏟았던 아들을 이미 잃은 뒤였다.
셰익스피어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번쩍이는 번갯불도 더 이상 두려워 말라. 모든 무서운 우르렁 거리는 벼락도 두려워 말라. 어떤 비방과 경솔한 비난도 두려워 말라. 그대는 기쁨도 슬픔도 끝내 버렸으니 모든 젊은 연인들은 끝내는 먼지를 뒤집어 쓰고 말리라.”
고향에 도착한 셰익스피어에게 고향이 어떠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드라마가 있다. ‘올 이즈 트루’라는 제목으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말년을 그린 작품이다. 흔히 고향을 떠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죽기 전에 고향을 떠 올리게 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걸 생각해 본다. 하지만 고향이 생각만큼 다정하거나 편안한 곳이 아니라는 점에 새삼 놀라거나 실망하지 않길 바란다. 타향에서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긴장 속에서 온갖 시련을 견뎌낸 사람일수록 더더욱 고향은 각별하고 위안의 대상처럼 자리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고향을 찾아 오는 사람의 일방적 짝사랑일 뿐이다. 고향은 이들에게 다시 새로운 인내를 요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문호인 셰익스피어에게 마저 고향은 어려운 시험 같았고, 인내심과 시간을 필요로 했음이 이 드라마에서도 보여진다. 어쩌면 고향은 타향에서 임무를 완수했을 때 조용히 잠을 자러 가야 하는 곳으로만 존재한다면 작은 삶을 지탱해온 커다란 슬픔 같은 인내가 치유되는 공간으로 자리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만 보면 고향은 또 하나의 냉혹한 현실이고 경쟁의 영역일 뿐이다. 이 점을 잊지 않는다면 고향은 좀 더 편한 대상이 될 수 있다.
나에게 있어서 고향은 아버지 어머니가 계신 곳이고, 어린시절을 형제,친구들과 함께 보낸 곳이다. 그리고 이제는 내 아이들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고향은 존재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는 걸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저마다 고향이 있고 그 곳에는 늘 의지가 되는 뭔가가 있는 곳이다.
셰익스피어의 시에서 가장 맘에 드는 문구는 “그대에겐 갈대도 크나큰 참나무와 같거늘” 이라는 대목이다. 자신이 선택한 방향으로 믿음을 가지고, 작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천천히 나아간다면, 인생의 폭풍우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는 참나무처럼 되지 않을까 싶다. 고향은 항상 묵묵히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박정용 (주)쿠엔즈버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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