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5월 전주시 화산동 149번지에서 종교 간행물 창간호 발행을 준비하고 인쇄하기 위해 부지런한 손놀림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호남 기독교 역사의 첫 숨결이 잠들어 있는 선교사 묘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였을 것이다. 목회자에게는 목회 자료를 제공하고 평신도에게는 신앙을 성숙하게 한다는 사명을 지니고 <복된 말씀> 제1권 제1호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복된>
<복된 말씀> 은 1950년대 초반 전쟁으로 초토화된 나라가 다시 일어설 기반조차 없을 때 어렵게 첫 책을 만들었다. 정세가 어둡고 생활의 기본 양식조차 갖춰지지 않았어도 당장의 불행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삶의 지향점을 고민하고 절대자가 부여한 인간의 품격을 올곧이 지킬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출판이었을까. 단행본 크기에 33면의 거친 종이에 쓰인 이 종교 기록물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복된>
미국 남장로회 선교부가 창간한 <복된 말씀> 은 전주시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전주 기록물 수집 공모전’을 통해 66년 전의 역사가 새롭게 조명되었다. 1953년 발행한 창간호부터 한 권도 버리지 않고 소중히 간직해온 김진영 원로목사님과 이영무 목사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복된>
전주 기록물로서 <복된 말씀> 의 가치는 우리 지역에서 인쇄하고 발간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1980년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으로 강제 폐간된 이후 각고의 노력으로 2016년 3월 계간으로 36년 만에 복간했다는 정신에도 기초한다. 복된>
창간하는 일에도 수많은 노고가 들어가지만, 한번 만들어낸 것을 이어간다는 것은 거쳐야 할 고비를 넘고 다음 세대에 남길만한 가치 있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산할 수 있는 동력이 필요하다.
창간 8년 후인 1961년은 <복된 말씀> 의 확장기로 이귀철 목사가 책임 편집을 맡았다. 문화공보부로부터 정식인가를 받았고 격월간으로 발행하다가 1968년부터 월간으로 발행회수를 늘리게 되었다. 잡지로써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 지역뿐 아니라 전국 단위 교계에서도 인정받았다. 복된>
1961년 발행한 제8권 제9호를 읽어보면, 주일학교 운영과 현실적 난점을 주제로‘일선 담당자의 노트에서’라는 형식을 빌려 아동 설교 현황과 방법론에 대해 필명 ‘버린 돌’이 기고한 원고가 눈에 띈다. 편집부에서 설교(일반 설교, 청년 설교, 아동 설교), 논문, 수상(감상문 형식) 및 기타 분야에 200자 원고지 30장 내외를 기준으로 독자들을 대상으로 원고 모집을 하고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하였다.
이 시기부터 모든 간행물에 ‘반공을 국시의 제 일의로 삼고’ 온 국민의 몸과 마음을 바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라는 혁명공약이 ‘좋은 책 등불 삼아 밝은 가정 이룩하자!’는 혁명 구호가 함께 인쇄되어야 했다. 그러니까 이 시기에 책을 만들고 인쇄를 한다는 것은 검열의 대상이었고, 군사혁명에 충실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데 한 치의 어긋남도 없어야 세상에 빛을 볼 수 있었다.
발행인 인돈(印敦)은 유진벨(Eugine Bell) 선교사의 사위로 한국 이름 ‘인톤’을 한자로 표기하였으며 William A. Linton이 본명이다. 또한 최초의 편집인 김홍전 박사는 본래 음악을 전공하였는데 ‘못난이 성가대’를 만들고 지휘를 하기도 하였고 리치몬드 유니온신학교에서 사해사본에 대한 연구로 학위를 받았다. 그의 집안이 모두 독립투사들이었으니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을 입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온전케되고자’하는 권두언의 다짐에도 투사의 결의가 엿보인다.
이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는 김진영 목사님은 처음 발간할 때부터 관여했었고 어떻게 인쇄했는지를 소상히 알고 있었다. 중간에 휴간할 수밖에 없었던 독재자들의 만행은 물론 군산 미군부대에서 쓰던 인쇄기를 가져다가 출판한 인쇄소의 위치까지도 기억했다. 삼일운동 정신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신흥학교와 서문교회 역사, 1898년에 개원한 전주 예수병원의 역사까지 자신이 죽으면 누구에게도 전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귀담아들을 사람이 많지 않아 한탄한다.
목사님은 1980년 폐간되었던 ‘복된 말씀’을 2016년 봄에 복간하여 일 년에 네 차례 30권째 발간하고 있다. 모든 기억이 기록으로 남는 것은 아니라 누군가 지켜낸 자료들이 기록유산으로 빛을 발하는 것은 생활의 흔적이 역사가 되는 현장이나 마찬가지다. 문화유산의 가치 발굴을 굴뚝 없는 산업으로 바라보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전주를 기억할 만한 수많은 사료 중에 민간이 소장하고 있으면서도 소실되거나 사장될 가능성이 많은 물품이면 보다 많은 시민과 국민에게 알려 문화의 가치를 공유해야 한낱 흔적이 아니라 역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출판과 인쇄의 결과물로 나온 책이나 문서에는 내용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물성, 형태, 기술, 저자 등 시대의 모든 정보가 제대로 담겨있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사료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민(民)이 주(主)가 된다는 역사인식을 가지고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첫걸음으로 기록을 소중하게 여길 줄 하는 태도를 지니고 소소한 일상의 축적이 종래에 가서는 역사라는 거대한 물결을 형성한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다. /이광익 전주시 민간기록물관리위원·전주 YMCA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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