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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흔적, 역사가 되다] 사진 아카이브-전주의 오늘을 기념한다

장근범 아카이브 8 대표·전주시 민간기록물관리위원

일제강점기 완산국민학교 졸업사진.
일제강점기 완산국민학교 졸업사진.

△묻다 : 우리는 왜 기념하려 하는가?

인간의 기억에는 정해진 선이 있다. 기억은 종종 물리적 공간에 갇히고 시간의 흐름에 속수무책 퇴화한다. 그래서 우리는 기념한다. 마음에 담을 만한 뜻깊은 일 혹은 여러 사람이 함께 공통의 기억을 지키기 위한 각성의 행위로 다시 한번 과거의 시간을 현재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현재를 즐겨라,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는 유명한 말을 재해석하면 결국 ‘오늘을 기념하라’는 주문이 아닌가 싶다.

전주 기록물 아카이브 중 일부로 기념사진과 졸업앨범 속 사진들을 통해 전주의 무엇을 기념하고자 했는지, 전주의 어떤 흔적을 남기고 싶었는지 사진에 귀 기울이며 들어보려고 한다. 기념사진 속 주인공들은 그저 묵묵히 우리를 바라본다.

 

△오늘을 기념하라 :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의 다른 말

기념사진은 어떤 사건을 오랫동안 기억하기 위해 촬영하는 특수한 목적이 있다. 시간이라는 망각의 문 앞에서 기억은 여러 갈래로 흩어지거나 퇴색하기 때문에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하는 일련의 과정이 곧 사진이라는 기록의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1948년 6월, 전주 고사동 소재 체육관 앞에서 백범 김구 선생과 조선 역도연맹 창시자인 서상천, 항일운동가 조완구, 이주상(1960년, 제10대 전주시장)과 전주의 체육인들이 조선 역도연맹 전북지부 결성기념으로 찍은 사진이 있다. 김구 선생을 중심으로 체육인의 정신과 기세를 보여주는 단단한 자세가 인상적인데, 사진의 맨 앞에 역기가 있고 그 한가운데 태극기를 걸어둔 모양에 결연한 의지마저 엿보인다.

이 기념사진 한 장으로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정보는 짧지만, 사진 속 1948년의 김구 선생과 역도연맹 사람들은 아직도 젊고 기세가 단단하다. 그러나 한국독립당 당수 김구 선생은 불과 1년 뒤인 1949년 6월 26일 암살되고 만다. 이들이 김구 선생과 함께 촬영한 사진은 그 시간 그 장소가 마지막이었을 테다.

우리가 일상에서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이 순간이 매번 마지막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생은 매 순간 현재를 통해 과거를 지나 미래로 향하고 있기에 유한하면서도 무한한 것처럼 느껴진다. 어떤 상황과 관계, 감정 등이 영원하고 불변하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기념하려 할까. 또 그것들을 영원의 상태로 박제하려 했을까. 누군가 함께했던 시간의 사진들, 눈으로 봤던 아름다운 풍경들 그 외에 모든 종류의 기념사진을 더해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우리의 만남을 기록해 주시오. 이 시간 그와 함께한 나의 마지막을 기록해주시오”

 

1946년 전주국민학교 기념사진
1946년 전주국민학교 기념사진

△사진을 읽고 이야기를 끌어내는 힘 : 푼크툼(punctum)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 롤랑바르트는 사진에 관한 노트 <카메라 루시다> 에서 사진의 요소를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해석의 틀에서 읽히는 촬영자의 의도로 주로 객관된 내용이 스투디움이다. 푼크툼은 아주 사소해 보이는 특징들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일반적 해석의 틀을 깨는 감상자의 주관적 해석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찍고 있는 기념사진에서도 스투디움과 푼크툼을 찾아볼 수 있을까?

1949년에 촬영된 서문유치원 원족(소풍) 기념사진을 본다. 사진이 주는 객관적 정보는 오목대로 소풍을 나온 유치원 아이들의 즐거운 한 때를 기념하는 장면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선생님과 엄마와 아이들은 한껏 옷을 차려입고 줄을 지어 사진가를 앞에 두고 가을 소풍의 하루를 기념했다. 이렇게 단순한 차원의 기록 사진으로의 상(像)을 스투디움이라 한다.

그런데 이 단체 사진의 오와 열을 이탈해 혼자 떨어져 얼굴에 손을 대고 앞을 응시하고 있는 소녀는 어찌된 영문일까? 오목대의 둥근 언덕까지 풍금은 어떤 연유로 자리했을까? 전주서문유치원 원족기념이라는 저 작고 하얀 글씨는 왜 하필 저 위치에 적어 넣었을까? 하며 사진이 보여주는 상(像)에 다른 이야기를 끌어내게 하는 힘, 7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저 사진을 보며 당시의 일상적 풍경에서 지금 다시 특별한 풍경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사진이 던지는 물음표가 우리를 쿡 찌르는 순간이 바로 푼크툼이다.

매 순간 맞이하게 되는 마지막 순간들, 마지막 경험(Memento mori)을 어떻게 즐길 것인가(carpe diem), 가슴을 쿡쿡 찔러대는(punctum) 이 특별한 “기념사진”은 이렇게 박물관이 아닌 개개인의 사진 저장고인 앨범에서 시작한다.

 

△아카이브(Archive) 그리고 아키비스트(Archivist) : 한 권의 졸업앨범

아카이브의 사전적 의미는 기록의 저장이다. 따라서 아카이브의 진정한 의미는 특정한 원칙에 따라 수집하고 분류한 기록들을 지속 관리함으로써, 이용을 원하는 누구라도 공유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추는 데 있다. 기록물 관리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아키비스트(Archivist)는 이를 행하는 주체이다.

1967년에 촬영된 전주 중앙여중 졸업앨범의 사진은 아카이브와 아키비스트의 역할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예이다. 한 권의 졸업 앨범에는 학교와 학생, 교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대별로 지역의 명승지 변천사를 알 수 있고, 교육과정의 일면이 담겨 있고, 학생들의 개성과 재간이 빛을 발하는 지면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모인 졸업앨범들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복장과 단체 사진의 포즈 아울러 배경이 된 전주의 풍경 등을 학창 시절의 추억과 함께 볼 수 있다. 졸업 앨범은 기념의 속성을 넘어 한 시대의 기록을 분류하는 기준이고 저장의 방법이다. 단순히 추억으로 떠올리기에 졸업앨범이 주는 사진의 위력은 이토록 경이롭고 훌륭하다.

 

1967년 전주중앙여중 졸업앨범(남천교).
1967년 전주중앙여중 졸업앨범(남천교).

△개인의 기록이 도시의 역사로 남는다 : 시민기록물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며 시간과 공간에 남겨둔 무늬가 기록이라고 한다면 도시의 격을 높이고 바탕을 채워가는 것이 역사가 되어 남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모습이 한동안 애석하게도 개인의 역사를 말하거나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금하거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아서 수많은 개인의 기록이 이미 먼 뒤꼍으로 사라졌다.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할 때, 고인의 유품을 정리할 때, 버려지는 사진에는 한 개인의 역사와 함께 시간과 공간의 역사 또한 사라진다. 앨범 속 기념사진 한 장에 눈에 보이는 정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와도 같고 이웃이었던 이들의 이야기가 과거의 전주가, 지금의 전주가 그리고 모두가 함께 기억할 미래의 전주가 움을 틔우려고 옆구리 찔러주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주의 역사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전주 시민 모두의 것이다. 개인의 역사가 모여지는 곳에 전주의 정신과 전주의 품격이 함께할 것이다. 이미 망자가 되었거나 어른이 되어버렸고, 어르신이 된 누군가는 계속 우리 시대에 사진 한 장으로라도 말을 걸어주면 좋겠다.

“삶을 즐겨라, 현실에 충실하라. 그리고 이 순간을 기록하라”

 

장근범 아카이브 8 대표·전주시 민간기록물관리위원
장근범 아카이브 8 대표·전주시 민간기록물관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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