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가끔 정치권 화두로 등장할 때가 있다. 전북 문화공연의 메카인 이곳의 탄생 비화가 자치단체장 귀감 사례로 소환되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무능력과 구태의연함을 탓할 때 거의 빠지지 않고 쓰인다. 머지않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무사안일한 자세를 경고하는 의미다. 2001년 개관 당시 소리문화전당은 전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시설 수준과 규모 면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완공되기까지 과정은 말 그대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IMF 회오리가 몰아치던 1998년 첫 삽을 뜨면서 이를 둘러싼 찬반논란은 뜨거웠다. 국난극복의 어려운 시기임을 감안하면 투입예산이 1000억을 능가한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일이다.
그때 정치스타로 급부상한 유종근 지사는 이런 반대여론에 굴복하지 않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글로벌마인드를 갖춘 거시적 안목과 지역발전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공직사회에서도 부정적 기류가 강해 내부 불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나라 살림이 거덜 난 판에 문화예술 공간을 짓는데 천문학적 돈을 쏟아붓는 게 제정신이냐”며 비판수위를 높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유 지사 결단력이 문화예술의 꽃을 피울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 낸 것이다.
지역발전과 주민행복은 선거를 통해 뽑힌 자치단체장의 운명이다.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발상 대전환과 함께 과감하고 신속한 행정처리가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지역현실은 이런 기류와 동떨어져 이래저래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포퓰리즘 낯내기 행사에는 집착하는 반면 대형 어젠다 개발을 통한 지역발전 밑그림은 아예 관심 밖이다. 기껏해야 감성 정치에만 열 올리는 직업 정치인만 존재하는 꼴이다. 이처럼 비관적 상황이 반복됨에 따라 주민들의 정치혐오증도 극에 달해 있다. 지난 2019년 조사결과 한국인이 가장 신뢰할 수 없는 공인으로 국회의원(39.8%)과 정치인(39.1%)이 각각 1, 2위를 차지한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새만금 행정구역 자치단체간 갈등이 대표적이다. 전북미래를 가름하는 핵심사업임에도 군산시 김제시 부안군의 소아병적 이기주의는 도를 넘었다. 결국 군산시와 김제시는 간극을 좁히지 못해 법정다툼까지 벌였다. 전주 대한방직 부지개발을 둘러싼 지루한 공방도 마찬가지다. 2조5000억 예산투입과 일자리 창출효과 5000개의 지역현안인데도 시가 무책임한 자세로 일관해 빈축을 사고 있다. 공론화위원회를 앞세워 책임을 떠넘긴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어느덧 성년이 된 소리문화전당이 올해 개관 20주년 특별기획전을 마련했다는 소식이다. 코로나의 숨 막히는 상황에서도 문화예술에 대한 시민욕구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이를 담아내면서 함께 소통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풍성한 느낌이다. 자치단체장의 선구자적 혜안과 굽힐 줄 모르는 뚝심이 가져다 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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