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2월 10일 저녁, 대한민국 국보 1호인 숭례문 누각 안쪽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초기 진화로 불길이 잡히는가 싶었지만 불길은 다시 치솟아 숭례문 상층부 대부분을 태워버렸다. 문화재 관리체계의 전반적인 문제와 함께 다시 뜨겁게 부상한 쟁점이 있었다. 국보 1호인 숭례문의 자격을 둘러싼 논쟁이었다.
당초 일제에 의해 보물 1호로 지정됐던 숭례문은 1962년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국보 1호로 지정됐다. 그 뒤 숭례문은 대한민국 문화의 상징이 되었으나 국보 1호로서의 숭례문 자격은 늘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국보 1호를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 될 때마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지정번호가 가치 서열에 따라 부여된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지정번호의 ‘왜곡된 가치’는 바뀌지 않았다.
줄곧 서열화 의혹(?)을 받아온 문화재 지정번호에 100년 전 일본 학자들의 판단이 영향을 미쳤다는 자료가 공개됐다.(한겨레신문 보도) 정인성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일본 건축사학자 세키노 다다시와 보조 연구자인 야쓰이 세이이쓰가 펴낸 <조선 예술의 연구> 보고서와 자료를 완역해 펴낸 <한국 고고학자가 다시 쓰는 ‘조선고적조사보고’> 를 통해서다. 이들 연구자들은 당시 조선의 문화유산 547종을 조사하면서 각각 ‘갑·을·병·정’으로 분류했는데 그 기준이 흥미롭다. 일본 역사와 연관성이 있고 예술성이나 역사적 가치가 가장 우수한 것은 ‘갑’, 그 다음의 것을 ‘을’, 보호의 필요성이 없거나 전용할 수 있는 것들은 ‘병’‘정’으로 분류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갑’ 등급 가장 위에 놓인 숭례문(국보 1호)과 원각사 십층석탑(국보 2호)이다. 일본 학자들에 의해 우리 문화재의 가치가 재단되었다는 증거다. 정교수도 인터뷰를 통해 “특히 남대문과 원각사탑이 1909년 분류 기록에도 갑의 첫머리에 올라와 있는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쯤되면 단순히 관리의 편의를 위해 지정했다는 대한민국 국보 1호가 숭례문인 ‘우연성’은 참으로 공교롭다. 한국> 조선>
문화재청이 문화재 지정번호를 공식 표기에서 없애기로 했다. 문화재 가치를 서열화하는 번호로 왜곡된 사회적 인식을 바로 잡기 위한 것’이란다. 이제 ‘국보 1호 숭례문’이나 ‘국보 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 숭례문’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바뀌게 된다. 이래저래 국보 1호 자격 논쟁은 끝나게 되었으나 논쟁의 본질이 어디에 있었던가를 생각해보면 반가운 일만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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