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난생처음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었다. 제목은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짤막한 에피소드 쉰두 편을 모아놓은 에세이다. 경악을 금치 못할 충격적인 일화가 이어지거나, 감탄을 자아내는 수려한 문장력이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무심한 듯하면서 섬세하고, 한없이 진지하다가도 어느 순간 하찮게 웃겼다. 아홉 살 소년 같은 순수함과 아흔 살 노인 같은 원숙함이 자연스레 어울렸다. 애써 화려하게 꾸며 쓰지 않아 깔끔하고 담백했다. 이러한 그의 문체를 나는 친구에게 “미지근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하루키의 대표작인 소설 《노르웨이의 숲》을 완독했다. 그러나 내겐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가 그것보다 훨씬 오랜 시간, 마음 한편에 뭉근히 자리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일주일 뒤, 동아리 활동을 하며 친해진 동생을 만났다. 그 속은 알 수 없으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처럼 항상 밝고 맑았다. 애정을 표현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어 시도 때도 없이 상대방을 ‘칭찬감옥’에 가두는 재주가 있었다. 함께 길을 걸으며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던 중 동생이 문득 고개를 돌려 물었다. “언니, 평소에 따듯하다는 말 많이 듣지?”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잠자코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언니는 너무 차갑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뜨겁지도 않아서 좋아. ‘미지근한 사람’인 거 같아. 나는 너무 뜨겁기만 해서 나도 내가 감당이 안 될 때가 있거든. 근데 언니는 나랑 다르게 딱 중간쯤으로 적당해서 항상 편안해 보여.”
‘미지근하다’라는 비유가 이렇게나 흔한 표현이었던가. 이전까지 입 밖으로 잘 꺼내지도 귀에 잘 들리지도 않던 그 밋밋한 단어가, 며칠 새 숱한 낱말들 사이에서 명징하게 도드라졌다.
‘미지근하다’, ‘미적지근하다’, ‘무난하다’, ‘평범하다’, ‘그저 그렇다’, ‘보통이다’, ‘어중간하다’, ‘어정쩡하다’, ‘애매하다’, ‘모호하다’, ‘희미하다’, ‘흐릿하다’, ‘흐리터분하다’, ‘불명확하다’, ‘불분명하다’, ‘두루뭉술하다’, ‘두리뭉실하다’. 하나같이 이도 저도 아닌 매력 없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런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려 남모르게 애썼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아닌, 특별하고 개성 있는 존재라고 나 자신을 세뇌했다. 그런데 일본의 천재 일류 소설가와 두 살 어린 칭찬감옥 교도소장 덕에 미지근한 것도 꽤나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더할 나위 없이 듣기 좋은 찬사처럼 느껴졌다. 몸에 힘을 좀 빼고 그냥저냥 무던하게 살아도 나름대로 그럴싸하다는 것을 그예 깨달았다.
상온 보관한 치즈케이크는 폭신하니 먹기 편하고, 식어버린 김치찌개는 입천장을 델 걱정이 없다. 치열한 축구 경기 끝의 무승부는 구장의 날 선 경계심을 풀어 해치고 묘한 평화를 선사한다. 날씬하지도 비만하지도 않은 보통의 체형은 어느 매장에서나 원하는 옷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빗물을 쏟을랑 말랑한 먹구름은 숨 가쁜 일상에서 틈틈이 하늘을 올려다볼 핑계가 된다. 당첨금 오천 원짜리 5등 로또는 언젠간 1등도 될 수 있을 거란 희망에 불을 지펴 다시금 일주일을 버티게 한다. 눈웃음 없이 입꼬리만 올려 짓는 어색한 미소는 최소한의 에너지로 불편한 상황을 유연하게 넘길 묘책이다. 삼대를 멸할 지독한 악당도, 바보처럼 착해빠진 비련의 주인공도 없는 힐링 드라마는 시청자의 지친 마음을 잔잔히 달랜다.
적당히 미지근한 나는 너무 차갑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은 편안한 사람이다.
/이민주(고려대 미디어학부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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