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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그럴싸한 취미를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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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전주문화재단 팔복기획운영팀 주임

대학교 입학 직후 교수님 연구실에서 면담했을 당시“자네는 취미가 뭔가?”라는 질문에 나는 전공과 순발력을 살려 최대한 그럴싸한 취미인 ‘독서’를 만들어냈다. 전공이었기 때문에 책은 오히려 과제처럼 느껴져 더 담을 쌓고 살았는데도 말이다. 취미의 사전적 의미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다. 이력서에 무난한 한 줄을 위해 만들어져 무려 9년간 이어졌던 거짓 취미는 최근 진짜로 즐거운 일을 찾고 나서야 끝이 났다.

코로나로 인해 집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나’의 시간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나와 인생의 가치를 어떻게 하면 상승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곧 취미생활이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원데이 클래스가 유행하고, 하비슈머(hobby+consumer의 합성어로 취미생활을 위해 소비활동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 취미 부자 등 취미에 대한 다양한 신조어만큼 내 삶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다양한 취미생활이 등장했다.

등산, 골프, 테니스와 같은 운동부터 수초로 어항을 꾸미고 물고기를 키우는 아쿠아 스케이핑, 작은 어항 속에 나만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비바리움(Vivarium)까지 매일같이 이색적이고 새로운 배움을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이다.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무색하게도 취미를 검색하면 자동 완성으로 가장 먼저 뜨는 단어는 ‘취미생활추천’, ‘취미생활 순위’이다.

이제 막 나의 취향을 고민해보려는 사람들에게 이런 단어들은 취미가 어쩐지 성공해야 할 것 같은 또 다른 사회적 과제처럼 느껴져 새로운 압박으로 다가온다. 분명 취미와 성공은 동일선상에 놓일 수 있는 단어이다. 그러나 성공은 그저 즐거운 취미생활의 부산물 중 하나일 뿐이다.

마에자와 유사쿠는 친구들과 밴드부를 했었고, 미국으로 가서 공연까지 보러 갈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었다. 일본으로 돌아와 밴드를 계속하며 미국에서 가져온 앨범을 판매하다 사업가가 되었고, 판매 상품은 앨범에서 의류가 되었다. 그 회사는 지금 일본에서 가장 큰 온라인 의류 쇼핑몰인 조조타운이 되었다. 김성완 작가는 카이스트를 졸업해 삼성전자를 입사했다. 동호회 운영진 활동을 했을 정도로 즐겁게 했었던 레고와 야근의 길에서 레고를 선택해 세계에서 21명밖에 없는 레고 공인작가이자, 하비앤토이 대표가 되었다.

이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했기 때문에 모든 선택에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이다. 음반 수집 취미로 유명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앨범 재킷이 멋있거나 가격이 싸다는 둥 다양한 이유로 사 모았다. 따라서 중구난방이고 결과적으로 모여버린 레코드.’라고 말한다. 슬기롭게 취미생활을 해야 한다는 틀에 갇혀 성공한 사례,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 남들과는 다른 사회적 의미를 가진 취미 모델을 밤새 추천받아 검증해보는 것은 결국 9년간 내가 취미는 독서라고 대답했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취미라는 단어에는‘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이라는 또 다른 정의가 있다. 취미는 개발해야 하는 새로운 스펙이 아니다. 유행하는, 성공한 취미를 쫓아가야 한다는 압박감은 내려놓고 인생에서 마주칠 아름다운 순간들을 떠나보내지 않기 위하여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정말 그럴싸한 취미 하나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이수진 (재)전주문화재단 팔복기획운영팀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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