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칼라 욕장>은 로마에 남아 있는 고대 유적지다. 해마다 여름이면 야외 오페라가 열리는 덕분에 이름을 널리 알렸지만, 그 전신은 이름 그대로 공공 목욕탕이다. 216년, 로마제국의 카라칼라 황제가 문을 열었으니 어림잡아도 180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대부분 시설이 그대로 남아 로마의 중요한 유산이 되었다. 카라칼라 욕장은 고대 로마 시대에 번성했던 공공 욕장 중 두 번째 큰 욕장으로 꼽힌다. 다양한 목욕시설은 물론, 오락실과 도서관, 체육관까지 갖춘 이 욕장이 고대 로마인들에게 어떤 공간으로 활용되었을지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고대 로마인들의 목욕 사랑은 특별했다. 목욕을 좋아하고 즐기는 고대 로마인들에게 공공 욕장은 단순히 몸을 씻어내는 장소로서가 아니라 휴식공간이자 사교를 위한 공간으로 발전해갔다. 황제들은 이러한 로마인들의 독특한 문화를 위해 수많은 방과 다양한 시설을 갖춘 거대한 공공 욕장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능력을 과시했다. 덕분에 350년쯤에는 성업 중인 로마의 공공 욕장이 900개가 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공공 욕장은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그 쓰임도 단순히 목욕과 휴식을 위한 장소로보다는 사교를 위한 공간으로 변질되면서 간통과 난교, 매춘까지 이어지는 퇴폐적인 장소로 전락해갔다. 매춘과 풍기문란으로 퇴폐문화를 조장하는 공공 욕장의 번성을 더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로마는 결국 시민들이 1주일에 한 번만 목욕할 수 있게 하는 ‘목욕제한령’을 공포해 공공 욕장의 남용(?)을 막았다. 공공 욕장의 번성이 로마제국의 존립까지 위협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상황으로 증명되니 이쯤 되면 ‘로마가 목욕탕 때문에 망했다’는 말도 그냥 나온 것은 아니겠다.
공공 욕장은 로마에서 시작되어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목욕탕 문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형태로 도입되어 발전하거나 쇠퇴했다. 우리에게 공공 욕장은 ‘대중목욕탕’ 혹은 ‘사우나’란 이름으로 친숙한데, 한때 한국의 독특한 ‘사우나’는 이름을 널리 알려 해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관광상품이 되기도 했다.
동네마다 자리를 잡아 우리 일상 문화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던 시절이 있다. 목욕탕이 발전하면서 ‘사우나’나 ‘스파’란 이름으로 동네에도 호사스럽고 고급스러운 목욕탕들이 들어서기도 했지만, 대를 이어가며 동네 사람들을 맞았던 동네목욕탕은 대부분 작고 아담한, ‘동네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다.
동네목욕탕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동네목욕탕을 대신한 다양한 공간이 들어서면서 운영의 어려움에 처해 문을 닫는 상황은 새삼스럽지 않지만 그래서 더 안타까운 현실은 따로 있다. 대중목욕탕이 꼭 필요한 취약계층이 안게 될 일상의 고충이다. /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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