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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팔도명물] 경북 안동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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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한지는 한지의 질감을 그대로 살리면서, 자연 색감 그대로 재현해 색감을 입혀 친근하고 정감가는 색한지 등 70여종의 한지를 생산하고 있다. 매일신문=엄재진 기자

고택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문종이를 새로 바른다. 이 때 사용되는 한지는 빛과 공기는 통과시키지만 바람을 막아 준다. 햇살이 한지 창호지를 뚫고 방안 가득 쏟아져도 한겨울 삭풍을 막아내는 신비의 종이다.

'한지'(韓紙), 천년을 간다는 세계 최고의 종이다. 조선 후기 문신 신위는 '종이는 천 년을 가고 비단은 오백 년을 간다'(紙一千年 絹五百)는 말을 남겼다.

그만큼 한지는 제작 방법의 특성상 보존성과 내구성이 우수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신라시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비롯해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등 유물들이 천 년을 견디는 한지의 우수성을 입증하고 있다.

닥나무를 베고·찌고·삶고·말리고·벗기고·다시 삶고·두들기고·고르게 썩고·뜨고·말리는 99번의 손질을 거친 후 마지막 사람이 100번째로 만진다해서 한지를 '백지'(百紙)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종이로 인정받고 있는 '한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다. 그 중심에 '안동한지'가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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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한지에서 한지 체험에 나선 외국인들. 사진 제공=안동한지

◆안동한지, 질감·풍부한 색감으로 전국 최고 명성

안동시는 전주시·원주시와 함께 국내 3대 한지 생산 지역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중심에 경상북도와 안동시, 안동한지가 역할하고 있는 것.

안동을 국내 3대 한지 생산 지역으로 만들고 있는 '안동한지'는 안동시 문화재 한지장(韓紙匠) 이병섭(57) 대표가 아버지 이영걸(81·안동한지 회장) 닥종이 명인의 뒤를 이어 2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안동한지는 국내 최대 전통한지 생산업체로 자리잡고 있다.

안동한지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닥나무를 주원료로 전국 최고 품질의 한지를 생산해 내고 있다. 이 곳에는 닥나무 원료창고를 비롯해 한지 제조공장, 한지상설전시관, 한지공예관, 체험장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안동한지는 외발지, 순지, 창호지, 배접지, 색한지, 공예용 염색지, 고화지, 서화지, 인테리어 벽지 등 70여종의 한지를 생산하고 있다. 전통한지는 소색(素色)이다. 쌀을 정미했을때 나오는 색이다.

안동한지에서는 소색의 전통한지뿐 아니라 닥을 분쇄 한 상태에서 염료를 넣어서 다양한 색을 입힌다. 안동한지의 색 한지는 전통염료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화려하지 않고 정감이 가는 풍부한 색감을 보여준다.

지난 2016년부터 정부 포상증서용 전통한지를 납품하고 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 영인본 사업, 각종 문화재 복원 사업에도 사용되고 있다. 고객들의 맞춤식 한지 생산으로 유명하다.

지난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 행사장 도배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방한했을 때 안동한지에 들러 전통한지 제작 과정을 둘러보고 선물용으로 사가기도 해 유명세를 탔다.

이 밖에 안동한지는 동화사, 제2석굴암, 경주 불국사, 안동대 미술대학, 지류문화재보존 연구소, 정재문화재 보존연구소 등 문화재 보존용으로 납품되고 있다.

특히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같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는 통일신라시대 종이, 즉 서기 754년 닥나무 종이에 먹으로 쓴 국보 제 196호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을 옛날 전통 그대로의 방법으로 2년여에 걸쳐 재현해 문화재청에 납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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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한지를 생산하고 있는 이병섭 대표는 50년 한지 제조 인생을 살아오고 있는 아버지를 잇는 젊은 한지장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매일신문=엄재진 기자

◆50년 한지 삶 아버지 잇는 젊은 한지장 이병섭 씨

지난 2015년 말 정부가 추진한 전통한지 재현사업 경연에 전국 11개 한지 업체가 참여해 안동한지가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품질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당시 조선시대 정조 친필 편지를 복원해 밀도·내절도·투기도 등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수백년 전 한지의 품질과 거의 유사하다는 평가를 얻어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는 후문이다.

안동한지는 1988년 '풍산한지'로 시작됐다. 이영걸 명인이 고향에 한지 공장을 설립하면서부터다.

이 명인은 1970년 충북 제천에서 1928년부터 42년을 한지를 제작해 온 정수창(1913년 생)에게 제조 기술을 전수 받았다. 1973년 제천시 영천동에 '영천한지'를 설립해 초배지·지방지를 생산해오다 고향으로 옮겨 본격 한지 생산에 나선 것.

이 때부터 이병섭 한지장은 아버지에게 한지 기술을 전수받았다. 지금은 닥긁기→ 잿물 만들기→ 백닥삶기→ 세척→ 티고르기→ 고해(叩解)→ 닥풀제조→ 통물만들기 →종이뜨기 →바탕쌓기 →압착탈수→ 일광건조→ 도침 등 한지 제조 전 과정을 직접 도맡아 오고 있다.

닥을 벗겨 백닥을 완성하고, 깻단을 태워 잿물을 만들고, 잿물과 백닥을 넣어 삶고, 닥 섬유가 잘 풀어지도록 방망이질하고, 황촉규를 이용한 닥풀내기 등 일련의 과정들을 전통기술 그대로 재현, 수천년 이어오고 있는 전통한지의 특성을 가장 잘 표현해내고 있다.

정수열→ 정수창(1913년 생) →이영걸(1942년 생)로 이어진 안동한지의 맥을 잇고 있는 이병섭(1966년 생) 한지장은 전국에서 가장 젊은 전통한지 생산 기술자다.

특히 대학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문화재학을 전공하는 등 문화재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 한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와 전승·보존에 가장 촉망받는 인물로 정평나 있다.

이병섭 한지장은 "전통산업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우리 고유의 멋과 얼이 스며있는 순(純) 한지 생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며 "안동한지가 한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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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한지 공장을 찾은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과 전국 대학 총장들. 매일신문=엄재진 기자

◆15회째 한지축제, 공자종손 '전통기술 발전·창조 기원'

올 해 10월 10일은 두 번째 맞는 '한지의 날'이었다. 안동에서는 한지 축제와 포럼, 전시회가 열려 한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기원하고 힘을 실었다.

안동한지 풍산 한지체험관에서는 (사)안동한지문화진흥회(대표 이병섭)가 주관한 '제15회 안동한지축제'가 열렸다. 안동한지의 우수성을 알리고, 한지공예 경진대회를 통해 전국의 우수한 한지 공예인을 발굴, 한지공예품 판매 촉진에 기여하는 자리였다.

같은 날 '전통한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추진단'(단장 이배용)과 (사)경북불교문화원(이사장 도륜)은 제2회 한지의 날을 기념하는 학술포럼과 특별전시회를 마련했다.

'한지, 천년의 숨결'을 주제로 열린 특별전시회에는 대한불교조계종 16교구 사찰에서 소장하고 있는 기록자료와 안동대학교 소장 자료, 안동역사문화박물관 소장 자료가 공개됐다.

안동 한지축제 행사에는 콩추이장(孔垂長) 공자 79대 종손이 참석

해 "한지는 전통사회의 지식과 기술을 대표하는 하나의 결정체"라며 "안동 한지축제를 통해 전통 지식과 기술이 더욱 발전되고, 새롭게 창조되기를 희망한다"고 축하하기도 했다.

한지 인생 50년을 지낸 이영걸 명인은 "안동한지가 중국과 일본, 이태리에서 프랑스 등 세계 구석구석의 한지 애호가들이 찾고, 한지의 우수성에 매료되고 있다"며 "안동한지가 세계유산 등재를 통해 후세에 길이 보존될 수 있는 모범사례로 자리잡도록 할 것"이라 했다.

매일신문=엄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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