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다/ 숨바꼭질하던 손녀가/ 꼭꼭 숨어든 네 살배기가/ 눈물범벅 콧물 범벅/ 하얗게 질려 있다 깜깜/ 지워진 세상 헤어나지 못한다/ 고래 배 속 같은/ 어둠이 두려운 지니야/ 더 무서운 건 환한 세상이라는걸/ 속속들이 발가벗겨지는 거라는 걸/ 알지 마라/ 네 눈동자 속 까만 머루알이/ 내 눈엔 없구나/ 못 찾겠다 꾀꼬리,/ 제 알몸 애써 안 모고 싶은/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지니야 나는/ 눈을 감는다/ 깜깜”(시 ‘깜깜’)
시절을 노래하는 시인 안성덕 시인이 3번째 시집 <깜깜>(걷는사람)을 펴냈다.
시집은 ‘1부 더 붉게 물들자는 약속’, ‘2부 걷고 걸었으나’, ‘3부 스스로 종메가 되었을 터’, ‘4부 도란도란 양철 대문 집’ 등 총 4부로 구성돼 60여 편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김정비 문학평론가는 “그의 이번 시집에는 아들뻘 되는 신입생이 일부러 못 본 체하는 청소부가 등장하고, 어떤 시에서는 ‘늙은 짐꾼은 짐이 될 뿐’이라며 서글픈 노년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며 “하지만 안 시인의 시 세계에는 나이 듦을 슬프게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평생’의 총량을 웬만큼 채운 사람의 특권 등을 굽어보고 있다”고 해석했다.
복효근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안 시인은 이번 작품을 통해 소실점으로 사라져 가는 것들의 뒷모습을 노래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다시 오지 않을 청춘의 시간에 대한 탄식과 회한이 아닌, 숙명적 체험 속에서 차오르는 우주의 순환질서, 원리와 섭리의 발견으로 읽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읍 출생인 안 시인은 지난 2009년 전북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다. 시집으로는 <몸붓>, <달달한 쓴맛> 등이 있으며, 디카에세이로는 <손톱 끝 꽃달이 지기 전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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