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많이 변했다. 네 집에 한 집은 반려동물을 키우며 동물도 ‘지각하며 느끼는 존재’임을 더 많은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런 시대 변화의 흐름에 직격탄을 맞은 우리의 옛 문화 중 하나가 바로 ‘소싸움’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자연스럽게 중단됐던 전국의 소싸움대회가 지난해를 시작으로 하나 둘 기지개를 켜자, 온순한 초식 동물인 소를 강제로 싸움에 붙이는 ‘동물학대’를 이제는 뿌리 뽑자는 강한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소싸움은 아무 곳에서 개최할 수는 없다. 농림식품부령으로 지정된 전국의 11개 지자체만이 ‘전통문화 계승’을 목적으로 소싸움을 개최할 수 있다. 현재 소싸움이 가능한 11개 지자체 중에는 전북도의 완주군과 정읍시도 포함돼 있다. 이 두 지자체는, 소싸움이 ‘동물학대’라는 논란 속, 더 이상 전국소싸움대회를 개최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완주군은 지난 5년, 정읍시는 6년간 전국대회가 열리지 않고 있다. 내년에도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이렇듯 내년에 전국소싸움대회를 열지 않겠다고 일찌감치 발표한 지자체는 총 5곳. 얼핏 보면 소싸움대회가 ‘동물학대’란 논란에 부딪혀 조만간 ‘과거’의 문화로 남는 것인가 싶지만 실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이지는 않다.
가장 먼저 전국소싸움대회가 ‘잠정 중단’된 지자체의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완주군의 경우, 2019년 마지막으로 개최된 이후, 대회를 개최하던 해당 부지에 변화가 생겼다. 코로나 기간 동안 공공 승마장이 들어서면서 더 이상 대회를 열 부지가 없는 것이다. 새로운 부지를 마련하려면 예년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발생하는데, 현재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할 때, 소싸움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예산을 증액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판단이다. 완주군 관계자는 “사실상 완주군은 소싸움대회를 개최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앞으로도 상황이 비슷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정읍시도 상황이 비슷하다. 전국대회와 주말 상설 경기가 활발히 열리는 다른 지자체와 달리, 완주군과 마찬가지로 전용 경기장이 없다. 공터에 상시로 경기장을 설치해 대회를 여는 형식이었는데 마지막 대회가 열린 지도 6년. 기존에 사용해 오던 정읍시립박물관 옆 부지는 이제 국민연금 연수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정읍시 역시 완주군과 비슷한 이유로 전용 경기장을 설립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상설 경기 없이, 간간히 한 번씩 전국대회만 열던 지자체는 일찌감치 ‘동물학대’ 논란을 이유로 더 이상은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전국의 소싸움협회와의 관계, 타지자체의 상황 등을 고려해 ‘폐지 선언’은 쉬쉬하고 있는 모양새이지만, 사실상 앞으로 전북 지역에선 지자체 주도의 소싸움대회는 열리지 않을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신라와 백제 시대부터 비롯됐다 전해지며 ‘소싸움의 발원지’라 주장하는 경남 지역의 상황은 어떨까? 사실상 현재의 동물학대 논란에 별다른 타격이 없는 상황이다. 가장 성황리에 소싸움대회가 진행되는 진주시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소싸움대회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창원시 역시 예년 수준으로 소싸움 관련 예산을 수립한 것이 확인됐다. 소싸움대회를 왕성하게 펼쳐 온 경상북도 청도군이 예외적으로 내년 소싸움축제를 개최하지 않기로 했는데, 청도군 관계자는 “대회 폐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앞으로 소싸움축제를 어떤 축제로 발전시킬 것인지 고민해 보는 시간 가져보기로 한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아울러 주말마다 열리는 상설 경기는, 여전히 억 단위의 예산을 들여 변함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는 일부 지자체에서 연례행사로 열리던 ‘전국 소싸움대회나 축제’를 잠정적으로 중단한 것. 여전히 청도군과 진주시를 비롯한 지자체에서는 주말마다 100여 마리의 소가 출전하는 싸움의 장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렇다 보니 싸움소의 육성 현황도 여전하다. 소싸움은 전국적으로 싸움소들이 우열을 가리기 위해 출전하고 있다. 경기가 열리는 지역을 불문하고 전국 어느 소나 등록만 마치면 출전이 가능하다. 현재 청도 상설 경기장에만 전국의 656마리가 출전하고 있다. 이미 소싸움대회가 수년 간 열리지 않는 완주에도 여전히 7 농가, 정읍에 3농가가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싸움소 육성 농가가 있는지는 정확한 파악이 어렵다.
동물학대 논란 속에서도 여전히 싸움소가 설 판은 넘치니 ‘보상’에 대한 논의는 시기상조이다. ‘보상’ 논의에 나서는 순간 소싸움대회가 ‘폐지’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셈. 소싸움 협회 관계자들 역시 환영하지 않는 시나리오이다. 결국 소싸움이 ‘동물학대’라고 주장하는 동물/시민사회단체와 ‘보전해야 할 문화’라는 소싸움 관계자의 입장 차와 이를 한 발짝 물러서 여론을 지켜보는 지자체의 입장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소싸움이 과연 국가무형문화재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여부도 변수로 꼽힌다. 전국의 소싸움 협회는 소싸움이 “여러 세대에 걸쳐 유지되어 온 우리나라의 오랜 민속놀이”라고 주장하며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한 움직임을 펼친 바 있다. 이에 국가유산청은 지난 1월, 소싸움을 포함한 8개 종목을 국가무형유산 신규 지정 대상으로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동물단체 등을 중심으로 시민 반대 서명이 펼쳐지는 등 거센 반발이 빗발치자 기존 종목에 대한 지정 조사를 실시하기 전 단계인 기초학술조사부터 선행하기로 했다. 소싸움이 무형유산 고려 대상에 올라 조사를 거칠 수 있는 종목인지부터 면밀히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국가무형유산원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전승 현황과 운영 방식, 동물학대 여부 등에 대한 기초학술조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올해 안에 마무리 될 예정”이다.
시야를 조금 넓혀 보면, 서양 국가 역시 비슷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미국에서는 카우보이가 말을 타며 떨어지지 않고 누가 더 오래 버티는지 겨루는 시합인 로데오가, 유럽에서는 한국의 소싸움과 비슷한 투우가 마찬가지 동물학대 논란으로 뭇매를 받고 있는 것이다. 투우는 1800년대부터 이어져 온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라틴 아메리카의 전통 오락이지만, 잔인한 동물학대라는 이유로 프랑스 남부 지역과 스페인 카탈루냐가 경기를 금지시킨 바 있다. 투우 지지자들은 문화적 전통이며 보전되어야 할 예술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오랜 논란과 의견 충돌에도 스페인은 올 5월, ‘국가 투우상’을 폐지하기로 결정하는 등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동물학대’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에서는 도박, 광고, 오락, 유흥 등을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동물학대’로 규정, 금지하고 있다. 소싸움 역시 도박, 오락, 유흥의 목적으로 동물을 싸움에 붙이는 것이기 때문에 동물학대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그러나 현재 소싸움이 가능한 것은 이 같은 규정에 대한 예외조항 때문이다. ‘민속 경기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경우’는 예외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여기에 소싸움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즉, 소싸움은 동물보호법의 규정상으로는 동물학대에 해당하지만, ‘민속놀이’이기 때문에 처벌은 면하고 있는 이중적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같은 모순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시민사회단체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단지 ‘민속놀이’라는 이유로 동물학대 금지 조항에서 예외를 두는 것은 당위성이 부족하고, 단순히 인간의 유희를 위해 동물을 싸움에 붙이는 행위를 전통으로 계승하는 것 역시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권대선 정읍녹색당 위원장은 “당장 소싸움을 금지하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으니 3년 정도의 일몰제 기간을 적용해 소싸움 관계자들에 대한 보상 등의 논의를 펼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거세지는 소싸움의 동물학대 논란. 오로지 인간의 유희를 목적으로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가하는 것이 ‘전통’이란 명분으로 살아남을 것인지, 과연 세대에 걸쳐 전승되어야 할 우리의 고유 예술과 문화로 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끝-
목서윤 전주MBC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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