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너무나도 유명한 백설공주의 한 문장이다. 동화책에 등장하는 거울은 신기하게도 왕비와 대화를 나눈다. 거울은 왕비에게 공주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고, 공주가 살아 있는 것도 알려주는 마법의 물건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거울은 원하는 것을 보여주거나 미래를 알려주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고 믿은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거울을 사용했을까? 우리가 사용하는 거울은 재질에 따라 돌에서 청동, 청동에서 유리로 바뀌었는데, 가장 오래된 거울은 기원전 6천년 경 튀르키예 무덤에서 발견된 흑요석 거울이다. 이후 기원전 3천년 경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지역에서 청동거울이 출현하게 되고, 16세기 과학의 발달로 유리거울이 등장하였다. 따라서 인류가 가장 오랜 기간 사용한 거울은 바로 청동거울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최초의 거울도 청동으로 만든 것으로 고조선시대에 제작된 다뉴뇌문경이다. 앞면은 매끄럽게 갈아서 거울면으로 이용하였고, 뒷면에는 신령스러운 힘을 상징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기하학적인 문양을 새겨 넣었는데, 그 문양이 번개 같다고 해서 뇌문(雷文), 고리가 2개 이상 달려 있어 다뉴(多鈕)라는 명칭이 붙었다. 다뉴뇌문경은 점차 문양이 복잡해지고 선이 가늘어지면서 기원전 2~3세기에 정문경(精文鏡)로 발전한다.
정문경 가운데 국보로 지정된 거울이 있으니, 현재 숭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일명 국보경이다. 직경 18㎝의 공간에 무려 13,000개가 넘는 정교한 선과 100여개의 동심원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선과 선 사이의 간격이 불과 0.2~0.3㎜에 불과한데, 더욱이 이 문양을 거푸집에 새기고 청동으로 주물을 부어 만들었으니 그 기술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처음 이 거울이 발견되었을 때 오죽하면 후대에 만들어졌다는 위조논란까지 있었겠는가? 그러나 아쉽게도 숭실대 국보경은 출토양상을 전혀 알 수 없다. 논산훈련소에서 군인들이 땅을 파다 발견하였는데, 이후 여러 곳을 떠돌다가 숭실대학교 박물관에서 구입했다고 전해질 뿐이다. 어떻게 땅 속에 묻히게 되었는지? 묻힌 곳은 무덤인지? 정식조사를 거치지 않았기에 알 길이 없다. 사람으로 치면 족보가 없는 셈이다. 당연히 학술적인 가치도 반감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거울은 국보로 지정되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우리나라 최첨단기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런데 전북혁신도시에서 국보경보다 더욱 세밀한 청동거울이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되었다. 현재 국립농업과학원이 조성되기 전 완주 신풍유적이 조사되었는데, 이 유적에서 무려 10점의 정문경이 확인되었다. 국내에서 그동안 발견된 정문경 수량이 60여점 정도인데, 신풍유적에서만 10점이 출토된 것이다. 이후로 당연히 신풍유적 일대는 한반도의 테크노밸리로 불리고 있다. 이미 2천 2백년 전부터 첨단산업이 발달한 혁신도시였던 것이다.
신풍유적에서 출토된 거울 가운데는 완형도 있지만, 깨진 상태로 발견된 거울도 많다. 일부러 거울을 깨뜨려 무덤에 넣은 것은 신풍유적만의 독특한 매장풍습으로, 말 그대로 파경(破鏡)이다. 파경은 이혼과 연관되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이성계는 거울이 깨지는 꿈을 꾸고서 조선의 왕이 되었다.
날씨가 쌀쌀해서 나들이가 쉽지 않은 요즘, 국립전주박물관 1층에 전시되어 있는 신풍유적 거울을 다시 한 번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신령한 기운을 받아 보면 어떨까? 왕이 되지는 못해도 로또번호라도 하나 나오지 않을까?
한수영 고고문화유산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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