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安寧)하다’ 아무 탈 없이 편안하셨는지, 짤막한 한마디의 무게가 온몸을 짓누르는 요즘이다. 이 참혹함이 진정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겪어내고 있는 현실인지, 혹 끔찍한 악몽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또 묻는다.
채 아물지 않은 아픈 역사의 상흔이 다시 살갗을 파고든다. 수십 년간 이름 없이 스러져간 작은 걸음으로 내디뎌온 민주주의가 단 몇 시간 만에 무참히 짓밟힐 수 있다는 기억 말이다. 권력을 사유화한 무도한 자들의 패악질에 평범한 일상과 내일의 희망이 산산이 부서질지 모른다는 자각에 몸서리가 쳐진다.
“두 시간짜리 내란이 있습니까?” 윤석열은 물었다.
“두 시간에 끝낼 내란이었는가?” 그에게 되묻는다.
바야흐로 ‘악몽의 데자뷰’ 다. 역사의 뒤안길로 저 멀리 퇴장한 줄 알았던 쿠데타의 망령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전두환의 권력 찬탈은 세계 최장기간 쿠데타로 평가된다. 1979년 12월 12일 ‘내란의 밤’은 찰나였지만, 전두환이 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1980년 9월 1일까지 장장 264일간 독재를 향한 집요한 밑작업이 이뤄졌다.
신군부는 5·18민주화운동을 군홧발로 진압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긴급체포했으며, 국회를 해산한 뒤 반헌법적 기구인 국가보위입법회의를 설치하는 등 서슬 퍼런 독재로 회귀했다.
지금 다시, 그 길을 가려던 자가 있다. “총 쏴서라도 끌어내라” 야만과 폭력의 문을 연 자, 바로 현직 대통령이다.
검찰은 윤석열이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등과 공모해 국회를 무력화시킨 뒤 별도의 비상입법기구를 창설하려 한 의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국헌문란으로 명백한 내란죄다. 윤석열 일당의 ‘내란의 밤’은 하룻밤 꿈이 아닌, 대한민국을 어둠으로 단숨에 삼켜버릴 ‘장기적 음모’의 서막이었다.
윤석열은 다른 의미로 ‘최초’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으로 출국이 금지됐으며,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았고, 수사기관이 체포영장을 청구해 법원의 영장이 발부된 것 하나하나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개인을 넘어, 국가의 불행이다.
아집과 독선에 갇힌 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스스로 건넌 자 누구인가. 국민의 일상을 무너트리는 비상계엄은 결코 겁박의 수단도, 통치행위의 도구도 될 수 없다. 온갖 증언과 증거가 윤석열을 내란수괴로 지목하고 있다.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죄스러움이 있다면 장막 뒤 비겁하게 웅크려 여론전을 획책할 게 아니라, 이제라도 수사와 탄핵 심판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염치와 양심의 실종은 인간성의 상실과 직결됨을 부디 명심하길 바란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시간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개인에 대한 폭압적인 수거와 처단이 아닌, 헌법에 따른 탄핵 심판이다.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은 무정부 속 혼란이 아닌, 헌정질서 회복과 민주주의 복원이다.
역사는 세 걸음 전진과 두 걸음 후퇴를 거듭했지만, 그럼에도 뚜벅뚜벅 전진해왔다. 지도자의 무도와 무능, 부패와 부정으로 나라가 위태로울 때면 곡갱이로, 짱돌로, 화염병으로, 촛불로 지켜온 나라다. 우리는 더욱 단단해진 힘으로 굳세게 나아갈 것이다. 바다로 흘러간 민심의 물결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반드시 봄은 온다. 혹독한 추위에도 민주주의 꽃잎의 뿌리를 지켜, 다시 활짝 피워낼 수많은 이들의 따뜻한 숨결이 있기에.
△박희승 국회의원은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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