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스포츠의 해가 만개했다. 지난 9일부터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는 밀레니엄의 첫 ‘눈과 얼음의 축제’인 2002동계올림픽이 한창이고, 오는 5월이면 전주에서도 월드컵경기가 펼쳐진다.
동계올림픽하면 떠오르는 영화는 아무래도 ‘쿨 러닝’(Cool Runnings·감독 존 터틀타웁·1993). 자메이카 최초의 봅슬레이팀이 88년 캘거리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실화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
봅슬레이는 커녕 눈조차 구경해본 적 없는 자메이카 청년들이 몸이 얼어붙을 정도로 매서운 추위와 다른 나라 선수들로부터 비웃음을 뒤로 한채 봅슬레이를 탄다. ‘쿨러닝’의 미덕은 스포츠영화의 고전적 내러티브인 ‘최후의 승리자’보다는 ‘스포츠 정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올들어 부쩍 거세진 ‘스포츠무드’를 반영이라도 하듯 복서 무하마드 알리를 주인공으로 삼은 ‘알리(Ali)’를 비롯해 ‘친구’를 연출한 곽경택감독의 차기작 ‘챔피언’, 양윤호감독이 가라데영웅 최배달(본명 최영의)의 일대기를 담은 ‘바람의 파이터’등 다양한 스포츠영화가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다.
승자와 패자가 뚜렷한 스포츠의 세계는 손에 땀을 쥐는 박진감과 좌절, 그리고 9회말 역전 만루홈런같은 극적 반전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한편의 드라마다. 그리고 영화제작자들이 이러한 ‘각본없는 드라마’를 가만 놔둘리가 없다. 갖가지 극적 요소를 한데 섞어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한 스포츠영화들이 양산되는 이유도 여기있다.
더욱이 스포츠를 소재로 삼은 영화들이 일정한 유형이 있다는 점을 알면 영화보는 재미가 더욱 쏠쏠하다.
스포츠영화의 첫번째 유형은 ‘주인공의 인간승리’다. 초능력에 가까운 재능을 가진 주인공이 온갖 역경을 딛고 성공한다는 내용으로, 단연 ‘록키’(Rocky·감독 존 아빌드슨·1976)를 꼽을 수 있다.
당시 무명에 불과했던 실베스타 스탤론을 단번에 세계적인 액션스타 반열에 올려놓은 이 영화는 무명복서가 일류선수가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세계헤비급 챔피온에 도전하는 과정을 눈물겹게 그린다.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작품성에서도 인정을 받았지만 90년까지 이어진 4편의 속편은 실베스타 스탤론을 영웅화하는데 급급해 팬들의 실망을 안겨줬다.
블랙코미디 ‘반칙왕’(감독 김지운·1999)도 평범하고 소심한 은행원이 반칙레슬러로 거듭나며 단조로운 일상에서 탈출하는 자아찾기를 그린다. 실적위주의 사회에서 부적응자에 가까운 은행원의 지지부진한 일상과 이제는 한물간 프로레슬링의 세계가 묘하게 맞물려 쓴웃음을 짓게 한다.
케빈 코스트너와 르네 루소가 주연한 골프영화 ‘틴 컵’(Tin Cup·감독 론 셀튼·1996)은 허름한 골프장에서 강사생활에 만족해하던 주인공이 한눈에 반한 정신과여의사의 격려로 골프의 그랜드슬램인 US오픈을 거머쥔다.
올림픽을 소재삼은 영화가운데 백미로 꼽히는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감독 휴 허드슨·1981)는 유태인이라는 편견을 극복하고 1942년 파리올림픽의 금메달을 거머쥔 육상선수들의 인간승리를 만날 수 있다. 1981년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개부문 수상하기도 했다.
아이스하키를 소재로 한 ‘사랑은 은반위에’(The Cutting Edge·감독 폴 마이클 글레이저·1992)와 피겨스케이팅을 다룬 ‘사랑이 머무는 곳에’(Ice Castles·감독 도날드 라이·1979)는 시력을 잃은 각각의 주인공이 시련을 딛고 재기하는 모습을 나란히 그리고 있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글렌 클로즈, 로버트 듀발, 킴 베이싱어 등 배역진이 화려한 ‘내츄럴’(The Natural·감독 배리 레빈슨·1984)은 야구에 관한한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주인공이 15년동안의 공백을 딛고 재기, 악전고투끝에 불꽃놀이같은 만루홈런을 터트린다.
‘K2’(감독 프랭크 로담·1991)는 온갖 극한상황을 극복하고 K2봉에 오르면서 자신에 대한 통찰을 통해 보다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산악인들을 그린다.
톰 크루즈의 미소가 매력적인 ‘제리 맥과이어’(Jerry Maguire·감독 카메론 크로우·1997)는 프로스포츠계를 좌지우지하는 스포츠에이전시의 세계를 다룬다.
유망한 에이전트인 제리 맥과이어가 ‘스포츠 비즈니스계의 비정한 분위기를 씻고 인간적인 작업방식을 구축하자’는 제안을 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쫓겨난 뒤 2류 선수 한명과 함께 ‘인간적’으로 재기한다.
관객들은 조만간 쫓겨날 동료의 운명을 짐작하면서도 앞에서는 부추겨주고 남의 전리품을 가로채는, 세상만사의 곡절을 지켜보며 허전함을 느낀다.
‘나의 왼발’과 ‘아버지의 이름으로’에서 함께한 짐 셰리던감독과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다시 호흡을 맞춘 ‘더 박서’(1999)는 IRA해방운동과 복싱이라는 이질적인 요소가 어우러진다. 전도유망한 복싱선수가 14년을 복역한 뒤 링에 재기하는 과정을 그린다.
스포츠영화의 두번째 유형은 오합지졸들이 조직력을 추스리고 최강의 선수나 팀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스포츠정신과 조직력’을 강조하는 것.
‘리멤버 타이탄’(Remember the Titans·감독 보아즈 야킨·2000)은 지난 70년대 인종갈등의 한가운데에 서있던 버지니아주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백인들이 대부분인 고교미식축구팀 ‘타이탄스’를 흑인감독이 맡아 흑백갈등을 극복하고 단합된 팀웍을 구축한다는 내용으로, 덴젤 위싱턴의 카리스마가 일품이다.
‘샐 위 댄스’를 연출해 일본 최대 흥행감독으로 인정받은 수오 마사유키감독의 ‘으랏차차 스모부’(1992)에서는 오합지졸의 대학스모부가 최강의 팀으로 발돋움한다.
‘메이저 리그’(Major League·감독 데이비드 S. 워드·1989)는 한물간 포수와 강속구를 던지면서도 제구력은 엉망인 투수 등 개성강한 선수들로 구성된 클리브랜드 인디언즈가 밑바닥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렸다. 재미있는 것은 실제 매이저리그에서 꼴찌에 맴돌던 인디언즈가 영화가 소개되던 해에 중위권으로 도약하는 경사를 맞는다.
아뭏든 올해는 스포츠관객이든, 영화관객이건 손에 땀을 쥐는 스릴과 환호를 만끽하는 한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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