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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마주보기]축제, 좋은 추억 안 좋은 추억

 

이런 추억은 좋다. 어린 유치원생들이 열 명씩 스무 명씩 모여 가설무대 언저리를 매미처럼 앵앵거리며 돌아다니다가 차례가 되면 일제히 무대 위로 뛰어오른다. 그리고는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율동을 한다. 따라온 엄마 아빠들은 한 구석에 모두 어울려서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나비넥타이를 맨 할아버지는 트럼펫이며 아코디온을 든 친구들의 밴드에 섞여 운동장 그늘에 앉아 다른 팀의 연주에 박수를 보내다가 손가락질을 하며 금니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다.

 

때맞춰 쨍한 햇빛이 넓은 마당 가득 쏟아져 내린다. 구석구석 기름진 음식 냄새가 코를 찌르고, 조잡하지만 정성껏 만든 수공예 제품들이 좌판 위에서 방실거린다. 사람들은 서로 뒤엉켜 식사를 하거나 어린 것들을 인사시키느라 분주히 오가다가, 때가 되면 또래끼리 어디론가 우루루 몰려가서 공연을 하거나 경기며 게임을 하느라 악다구니를 쓰고 박장대소하기도 한다. 하루해는 너무 짧다.

 

어스름이 깔리면 모처럼 성장을 한 가족들이 지역 출신 극단이며 연주가들의 공연을 보러 간다. 아, 때로는 세계적인 성악가도, 교향악단도 곁들여진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면 연주자와 청중이 배우와 관광객들이 로비며 극장 마당에서 삼삼오오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을 한다. 이제 밤이 짧다. 어디서 보았을까? 가고시마의 한적한 시골 어디쯤이었을까? 동양의 나폴리라던 통영 부둣가였을까?

 

이런 추억은 없는 게 낫다. 동원된 청소년들은 선생의 눈을 피해서 해찰하기에 바쁘고, 한쪽에서는 교복 입고 담배 문 채 튀다가 재수 없이 걸린 애들이, 철컥 철컥 뺨을 맞는다. 대책 없는 땡볕 한 가운데에서는 여중생들이 오만상을 찌푸린 채 주저앉아서 해마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축제를 앞 다퉈 저주한다. 무대 뒤에서는 모처럼 거금에 팔려 온 예술가들이 잔금 지급 시점을 두고 주최 측과 옥신각신 핏대를 세우고 있다. 질컥거리는 난장 골목은 낮술에 취한 이들의 술값 시비로 가히 난장판이다. 좀 더 가까운 곳에서 그럴싸한 앵글을 잡아내려던 사진기자는 공연 스탭의 싸늘한 제지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첨단 공연장의 대리석 로비에는 늦게 와서 공연장에 미처 못 들어간 노인들이 삿대질을 하며 어린 도우미를 닦달하는 소리가 고래고래 울려 퍼진다. 청정하천으로 슬며시 설거지물을 흘려보내던 포장마차 주인은 마차를 뜯네 마네하며 을러대고 돌아서는 담당 공무원의 등 뒤에 대고 찍, 침을 뱉는다. 어디서 보았을까? 그런 건 생각나지 않는 게 더 낫다.

 

추억은 과거지사이지만 과거지사를 추억하는 것은 늘 지금 지나가는 현재의 일이다. 그런즉 추억의 이름 앞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그 추억 속 현상들의 바탕에 어떤 생각들이 깔려 있었을까를 짐작해봐야 한다. 답은 그리 어렵지 않다. 축제를 먼저 장삿속으로 바라 본 모든 현장은 안 좋은 추억을 남긴다. 좋은 추억은 어떻게 현재로, 미래로 이어지는가? 축제는 모름지기 해당 공동체 구성원의 한 해 사는 일을 되돌아보고 또 한 해를 준비하는 데에 쓰여야 한다.

 

그리하여 그 지역 사는 모든 이들이 저마다 한 가지씩의 제물(공연물이든, 음식이든, 운동이든 또는 청소하고 안내하는 일까지)을 가지고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면서, 스스로의 신명을 다 발휘하여 이웃과 함께 즐기는 자리, 그것이 곧 축제의 제 자리이다. 거기에다가, 나팔 불고 목청 높여서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진정 축제의 주인이 된다면, 오늘날의 시대정신에 충실한, 현대화한 이상적 공동체(communitas)를 구현하는 것이 결코 못 미칠 이상(idea)만은 아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 모습 자체가 참으로 귀한 관광 상품이 될 터이니, 때만 되면 산업화와 경제성을 우려해야 하는 그 안 좋은 추억도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곽병창(전주세계소리축제 총감독ㆍ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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