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청계천에 나가 보았다. 청계천 복원에 뒤이어 광화문과 청계천은 휘황찬란한 조명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연말부터 루미나리에(luminarie: 조명으로 만드는 축제) 서울 행사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도시를 밝히는 불빛 아래서 사람들은 해맑은 모습으로 몰려다니고 사진을 찍으면서 즐거워한다. 도시의 공간을 자기표현의 욕망을 드러냈던 월드컵 이후 사람들은 공간을 주체적으로 즐기는 데 더 이상 부자연스럽지 않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탄생했다는 데 굳이 이의를 달기는 싫으나, 나에게 청계천은 하나의 단순한 ‘이미지’로만 인식되었다. 그 화려한 조형물이 전달하는 ‘이미지’는 지난 겨울 일본의 센다이 시에서 보았던 소박한 루미나리에 불빛과 내 의식 속에서 명확하게 구분되었다. 시민들이 1년 동안의 자치적인 모임을 통해 행사를 준비해서 만드는 ‘소박함’과 기업의 협찬과 서울시의 전시 행정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화려함’ 사이의 명확한 차이가 의식되었다. 아마도 그 차이는 행정적 효율성과 문화적 소통 원리와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도시는 많은 문제들로 넘쳐난다. 가판을 운영하는 사람에게는 잡지 판매가 저조해지는 것이 문제일 것이고, 방음이 잘 안 된 건물에 사는 사람은 이웃집에서 뿜어대는 소음이 괴로울 것이다. 저녁에 자기 집 앞에 쓰레기가 무단으로 버려지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부모는 아이의 등굣길이 걱정일 것이다. 이처럼 지역의 도시는 풀어가야 하는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문제를 풀어가는 데서 행정적으로 효율적인 방식만을 고집하거나 이른바 전문가의 기술합리적인 방식으로는 문화적 해결에 항상 미달한다. 종종 문제는 더 확대되고 의견 차이는 시민들 사이에 심한 대립을 낳기조차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역 내에서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문화적 소통의 매개자들이 있어야 한다. 이 매개자들은 도시의 구성원들이 가지는 이해관계, 의견들을 조율하면서 공공 영역의 과제로 문제를 해결해간다.
이런 의미에서 지역의 문화 역량이란 문화적 소통의 매개자들이 얼마나 있느냐와 거의 같은 의미라고 나는 항상 생각하고 있다. 문화적 전통과 문화도시의 지향을 꿈꾸는 전주에서 새로운 문화적 소통의 매개자들이 많아진다면, 전주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풀어가면서 ‘창조적인 공동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신년에 해보게 된다.
△전교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과 문화연대 문화교육센터 소장,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효관(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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