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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10월이 저물기 전에 전시회 가자 - 이원복

이원복(국립전주박물관장)

주위 풍경이 하루가 다르게 바뀐다. 감나무는 해거리를 한 탓에 올해는 가지가 찢어들 듯 많은 결실을 뽐낸다. 바람 불자 단풍 든 것과 아직 녹색을 유지한 잎들이 함께 우수수 떨어지는 장면을 접하니 만감이 교차된다. 열심히 최선을 다한 이들에게 준 훈장勳章처럼 감을 매달고 축 처진 가지를 보면 노인이 여러 명 아이를 업은 양 안쓰럽기도 하다. 해서 바람은 우선 나무 짐을 덜어주려 잎을 지움인가.

 

'문화의 달' 10월은 각종 전시와 학술대회 문화행사로 전국이 들썩인다. 유사한 행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니 선택의 어려움이 있다. 우리 지역에선 5년 여 걸려 차근히 준비한 거석문화 전문 고창고인돌박물관이 지난 9월 25일 드디어 문을 연 쾌거快擧가 있었다. 문제는 앞으로 지속적인 운영을 위한 인력 증원이다. 이를 '훌륭한 시설의 병원에 유능한 의사'에 비유해 연구직硏究職 중요성을 거듭 힘주어 강조한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지건길 박사의 건배사는 정말 가슴 깊이 새겨 귀담아야 할 충언이 아닐 수 없다.

 

새 정부 들어서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전국 12개 국립박물관이 연말까지 관람료를 무료로 해오고 있다. 더불어 지난해부터 시작한 지역박물관 특화사업의 일환으로 우리 박물관은 수개월에 걸쳐 지난 봄 1층 고대문화실을 새롭게 바꿨다. 이어 지금 문 닫고 개편에 들어간 2층 미술실도 연말이면 새롭게 탈바꿈 할 것이다.

 

국립전주박물관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조명하고자 1999년 고창을 시작으로 도내 14처 군과 시를 대상으로 기획한 특별전이 어느새 중반을 넘겼다. 올해는 그 여덟 번째로 '전북의 역사문물전 Ⅷ 김제金堤'(10.21~11.30)이 열리고 있다. 금만평야의 풍요를 바탕으로 화사하게 전개된 지난날 김제 모습을 '김제의 여명黎明과 발전', '풍요豊饒의 땅 벽골제', '묵향墨香이 깃들고' 등 역사에 펼친 이 지역 문화의 본질과 독자성獨自性과 특징을 일곱 주제로 구성해 조명한다.

 

1938년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1906~1962)이 서울 성북동에 국내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우리 민족 문화유산의 보고寶庫'로 지칭되는 간송미술관澗松美術館을 건립했다. 이곳에서 1971년 가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매년 봄, 가을 두 차례 2주씩 특별전을 열어 비장의 문화재를 공개하니 이번이 75회이다. '보화각건립 70주년기념 서화대전'(10.12~10.26)으로 신윤복의 〈미인도美人圖〉를 비롯해 조선시대 서화 명품 108점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 전시를 놓치면 후회와 아쉬움이 클 것이다.

 

가을은 한 해를 평생에 견줄 때 바야흐로 노년기 시점, 하루로는 저물 무렵 황혼이다. "단풍 든 잎이 봄꽃보다 곱다"는 문구가 떠오른다. 젊음의 생기만이 아닌 잘 숙성된 젓갈과 김치 그리고 술맛의 진가를 생각하게 한다. 순간에 열과 성을 다해 열심히 살았건 그렇지 않건 우리 모두가 피할 수 없는 시간에 이른 것이다. 이젠 조금은 숨을 돌리고 지난 시간들을 볼 때이기도 하다.

 

무엇 때문에 그리 바쁜지를 되묻게 된다. 최근 삶의 질과 더불어 크게 화두가 된 '느리게 살기'의 첫 번째가 서두르지 않는 것이라 했던가. 시월이 저물 무렵, 우리 마음을 따듯하게 할 좋은 전시를 찾아 미술美術의 숲을 거님은 또 한 장의 아름다운 풍경화가 아닐까.

 

/이원복(국립전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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