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고, 누구나 똑같이 나이를 먹었다. 한 살 더 먹었으니 철이 좀 들려나? 언제 철 들래? 이 말은 왠지 공자님도 들었을 것 같다. 철(鐵)을 먹으면 철이 들까? 우스갯소리지만 묵직한 철을 먹으면 사람도 좀 무게감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바람일 것이다. 철 드는 법은 죽을 때까지 모를 것 같지만, 철(鐵)은 생각보다 훨씬 우리 주변에 가까이, 그리고 많이 있다.
2023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철강 생산량이 세계 6위이다. 영토면적으로 109번째인 우리나라에서 철강 생산량이 6번째라고 하니, 철이 우리의 산업을 선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의 발달도 도구의 재료를 기준으로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구분하고 있으며, 아무리 실리콘·탄소섬유와 같은 신소재가 개발된다고 해도 철 만큼 인류 발달에 큰 변화를 준 물질은 아직 없다.
기원전 2000년경 튀르키예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발명된 철(鐵)은 실크로드를 따라 고조선시대 한반도로 들어왔다. 압록강유역을 중심으로 철기유적이 확인되며, 이후 한반도 철기문화는 바닷길을 따라 남쪽으로 유입되는데, 북한을 제외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철기문화가 시작된 곳이 어디일까? 한강 유역의 서울일까? 천년 고도 경주일까?
남한지역에서 처음으로 철기문화가 싹 튼 곳은 바로 전북혁신도시 일대이다. 전북혁신도시가 어떤 곳인가? 준왕이 남래하여 마한이 시작된 곳, 세계 최고의 정교함을 자랑할뿐더러 21세기 첨단기술로도 재현하기 어려운 청동거울이 가장 많이 제작·사용된 곳, 기원전 2~3세기 한반도 수도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유적이 밀집된 곳이다. 선진문화와 고도로 발달된 기술력이 바탕이 되어 다양한 청동기가 제작되고, 철기문화가 발전한 것이다.
전북혁신도시는 대한민국 철기문화의 발상지이자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금속문화의 메카이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완주 갈동유적에서는 발굴된 유물이 2건이나 보물로 지정되었다. 우리지역에서 발굴된 유물이 보물로 지정된 예는 갈동유적이 처음이며, 한 유적에서 2점 이상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사례는 전국적으로도 왕릉급 무덤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 만큼의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찬란한 문화유산은 얼마나 보존되고 알려져 있나? 혁신도시로 선정된 10개 지역 가운데 전북은 전국에서 가장 넓은 면적이 개발되었으며, 그 면적은 무려 3백만 평에 달한다. 그러나 전북혁신도시를 아무리 둘러봐도 문화유산을 알리는 전시관이나 박물관 하나 없는 게 현실이다. K-컬쳐가 세계를 주도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과거 문화유산에 너무나도 인색하다. 어디 이 뿐인가?
2022년 전라북도는 지정유산 1,000건이 넘었다고 대대적인 홍보를 하였다. 당시 기사를 보면, 특별기획전과 문화유산을 활용한 상품개발 등 다양한 기획과 마케팅이 차고 넘쳤다. 하지만 2년여가 지난 지금, 뭐가 얼마나 달라졌나? 현재 우리지역은 가장 위험한 문화재만 엄선하여 보수만 하는 수준이다. 중환자실만 운영해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종합병동과 같은 실정인 것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예산 부족이다. 20여년 넘게 거의 동일한 예산으로 늘어난 문화유산을 관리하기는 불가능하며, 활용이나 조사·연구는 꿈도 못 꾸는 게 전북특별자치도 K-문화유산의 현실이다. 이러다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호미나 가래 모두 철로 만드니, 새해에는 여하튼 모두 철 들고 볼 일이다.
한수영 고고문화유산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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