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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예찬] '취집'가는 시대 - 이현수

이현수(시인)

올해도 사상 최대의 취업난이라고 한다. 작년에도 그랬고, 그 전 해에도 역시 그랬다. 해마다 들려오는 사상 최대의 취업난. 벌써 몇 년째 겪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년에는 더 심각해진다고 하는데 이제는 하도 흔해빠져서 시큰둥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이 와중에 필자가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이 있다면 그건 극심한 취업난이 만들어낸 희한한 신조어들이다. 이태백, 삼팔선, 오학년, 88만원 세대 등등. 감춰진 속뜻을 알고 나면 누구나 고개 끄덕이며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중에는 필자가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신조어도 있다. 바로 '취집'이다.

 

'취업'과 '시집'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이 말은 취업이 힘든 여성들이 취직을 포기하고 결혼을 선택하는 것을 뜻한다. 이른바 '잘난 남자'의 삶을 디딤돌로 삼는 반갑지 않은 현상이다. 그러나 최근 경기침체에 따른 취업난과 실속을 따지는 신세대 결혼관이 맞물리면서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인생의 배우자를 찾는 일은 언제나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피신하는 셈 치고, 그저 편하게 살아보자고 결혼을 한다니! 오죽 힘들면 그럴까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괘씸하기까지 하다. '취집'속에 감춰진 '잘난 남자' 만나 편하게 살고 싶다는 꿍꿍이가 너무 비겁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실 여자의 목소리가 집 밖으로 나온 지는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여자가 남자에 비해 사회에서 중심을 잡는 일이 더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스로가 여성임을 자랑스러워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여자들도 많다. 한 번 취직하면 결혼을 최대한 늦추거나 등 떠밀어도 굳건히 버티는 여자들은 더 많다. 그런데도 '취집'을 똑똑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취집'을 생각할 만큼 똑똑하다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다시 한 번 똑바로 보자. '취집'이 생각만큼 만만할까? 주위를 둘러보면 취직보다 더 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다. 안정된 직장에 경제적 여유가 있는 상대를 찾기 위해서는 본인 역시 그에 상응한 자격을 갖춰야함은 기본이기 때문이다.

 

또한 결혼정보업체에 등록해서 나보다 훨씬 나은 상대를 만날 거라 기대한다면 이 역시 잘못 짚었다. 상대방 역시 같은 생각일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요즘은 남자들도 결혼을 꺼린다. 우리 부모세대처럼 결혼하면 호박이 넝쿨째 들어오던 시대가 지났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왕자도 아닌데 신데렐라를 모셔 와야 하니 어찌 겁이 안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요즘 내 주위엔 서른 넘은 남자들이 차고 넘친다.

 

지금 우리가 살아나가는 이 시대는 분명 힘들다. 그러나 아직도 여자이기 때문에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오히려 이런 세상을 엎어버릴 생각을 하자. 이 까짓것 별거 아니라고,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시련들과 즐겁고 치열한 대화를 하며 이겨 내보자. 적어도 제 목소리를 내며 살기 위해 더 오래 참고 숨죽였던 여성의 역사위에서 살면서 그 깊이를 알지는 못해도 비겁해지지는 말자.

 

/이현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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