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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예찬] 남의 인생을 살아가는 바보 - 박영준

박영준(전주시립극단 기획자)

 

얼마 전 경남 사천에서 열린 결혼식에 다녀왔다. 신랑 신부는 전남 광양에서 살고 있었지만, 예식은 신랑 가족이 있는 곳에서 한다고 했다. 전주와는 2시간 30분 거리. 새벽 7시부터 차를 몰아 결혼식장에 도착하고 보니 식이 시작되려면 아직 1시간 20분이 남았다. 물론, 식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신부는 메이크업을 하고 있었고, 신랑은 지난 밤 친구들과 술을 많이 마셨다며 아침 일찍 사우나에 갔다고 했다.

 

얼마 후 신랑이 도착하고, 신랑측 하객들과 신부측 하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신부측 가족들은 보이지 않았다. 신부측 가족들은 출발이 늦기도 늦었지만 길이 막혀 결혼식 시작 20분 전에서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이후 결혼식은 무난하게 진행되었고 식사까지 마친 가족과 친지, 친구, 동료들은 다시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나는 '5월의 신부'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래서 인지 사천에서 전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결혼식 문화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결혼은 새 가정을 이루는 신랑 신부와 그들의 가족들에게 모두 중요한 사건이다. 당연히 준비하는 과정부터 꼼꼼히 챙겨야할 일들이 많다. 처음 시작은 신랑 신부였지만, 결국 부모님과 주변사람들의 다양한 의견들로 인해 다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사소한 의견 차이로 감정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지고, 행복해야 할 결혼생활이 부부싸움으로 시작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결혼은 신랑 신부의 것이 아니다. 사랑은 신랑 신부가 하는데, 결혼은 부모님의 것이 되고 만다. 상견례를 하고 나면, 부모님들은 신랑 신부의 생년월일부터 챙겨 사주에 맞춰 결혼날짜와 결혼시간을 받는다. 신랑과 신부의 고향이 다를 경우에는 어디서 결혼식을 치러야 할 지, 각 지역의 결혼 풍습은 어떠한 지도 알아야 한다. 남자가 집을 준비하고 여자가 혼수를 해오는 경우가 일반화된 우리 사회에서는 신혼집 평수에 따라 혼수 규모도 정해진다. 예단, 예물을 결정하는 과정에서의 신경전도 만만치않다.

 

요즘 결혼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축하인사와 함께 예비신부와 많이 싸웠냐는 질문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아직까지 싸우거나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은 일은 없었다. 부모님과 상의할 부분은 미리 조율하고, 대부분의 결정권을 넘겨 받았다.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 많아지면 의견이 아니라 참견이 된다는 생각에 최대한 둘이서 상의하고 결정하기로 했다. 결혼의 주체는 나인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고 부모님과 주변에 의해 결정되는 모습이 마냥 좋아보이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니 우리는 어릴 때부터 선택권이 없는 삶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부모가 정해주는 옷을 입고, 부모가 권하는 대학과 학과를 택했다. 그러다 보니 결혼도 내가 아닌, 부모님이 원하는 상대를 찾아야만 했고 때로는 부모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현실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내 삶이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결정되는 현실. 주변 사람들의 의견과 충고가 나에게 살이 될 수는 있겠지만, 뼈가 되고 정신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신이 지금 살고 있는 인생은 당신의 것인가, 아니면 누구의 것인가.

 

/박영준(전주시립극단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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