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내 어느 아파트 앞에 서는 노점상 이야기다.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지만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구체적인 설명은 피한다.
20m 남짓 되는 노점장터에는 채소장수 세 팀이 나란히 장사를 하고 있다. 세 팀이 저마다 개성이 남달라 이 동네 사람들은 골라 사는 재미가 있다. 이들을 편의상 '갑','을','병'팀이라고 구분하기로 하자.
먼저 '갑'팀, '을'팀과 함께 노점상의 터줏대감 격이다.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같이 장사를 한다. 안주인은 친절하고 바깥주인은 호탕하다. 이들은 콩나물 500원 어치를 달라 해도 타박이 없다. 굳이 단점을 꼽으라면 '센스가 없다'고나 할까. 이들은 누구나 찾는 '대세'인 상품만 진열하고 이다. '열무'와 더불어 양파, 당근 등 살 것들이 꽤 있었지만, 다른 집에서 한꺼번에 사기로 했다.
'을'팀은 부부다. 이들의 노점상 앞에 서면 먼저 진열해놓은 상품들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비타민C가 귤의 20배 고추 10개 1000원', '아삭 아삭 오이고추 5개 1000원', '향긋한 깻잎 20장 500원', '이빨에 끼지 않는 무주 대학 찰옥수수', 박스를 뜯어 네모난 표지판을 만들고 매직펜으로 큼지막하게 적어놓은 설명글들이 재치있다. 그냥 갈까 하다가도 '맞다. 오이고추가 아삭아삭하니 입맛을 돋우겠다.'하는 생각에 지갑에서 돈을 꺼내게 된다. 그런데 돈을 받고 물건을 건네주는 동안에 내외가 말이 없다. 표정도 시무룩하다. 알고 보니 손님들이 일일이 가격을 묻는 것이 귀찮아 표지판을 마련해두었단다. 표지판 덕분에 확실히 손님들의 질문 가짓수가 줄어들기는 했을 텐데 그래도 부부는 반복되는 손님들의 질문이 귀찮은 모양이다.
마지막 '병'팀, 가장 나중에 장터에 합류한 이 팀도 부부다. 이 집 안주인에게는 독특한 재능이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의 발길을 붙들어 세우는 것이다. "이쁜아~ 오늘 상추가 싱싱하고 좋아, 들여가 봐." "비싸지 않아요?" 하고 돌아설라치면 "비쌀 때 먹어야 맛있지."하고 쐐기를 박는다. 이내 손님이 마음의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비닐봉지에 담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아니 이모, 그래도 안 살래요."하고 돌아서는 이는 많지 않다. '병'팀의 또 다른 기술 중 하나는 틈새를 확실히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갑'과 '을'이 일반적인 품목들을 진열한다면 이들은 플러스 알파를 가지고 나온다. '갑'과 '을'에는 상추가 깻잎 밖에 없지만, '병'팀은 항상 온갖 쌈 채소를 구비하고 있다. '갑'과 '을'이 수박과 참외를 늘어놓으면 '병'은 수박와 참외는 물론이고 자두와 천도 복숭아, 체리에 청포도까지 올려놓는다. 다만 이들에게도 너무나 확실한 단점이 있다. 사람에 따라 물건의 가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들을 오래 지켜본 바로는 저마다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세 팀의 수익이 비슷해 보인다는 것이다. 가장 무난한 '갑'팀은 필요 품목만으로 구성해서 위험부담을 줄이니 손해가 날 걱정도 적을 것이다. '을'팀은 눈에 띄는 스토리텔링으로 손님을 잡아끈다. '병'팀은 립 서비스에 틈새공략으로 맞서고 있다. 반면 단점도 비슷한 수준이다. '갑'은 너무 무난하기만 하고, '을'은 서비스가 부족하며, '병'은 '눈 가리고 아웅'이다.
오랫동안 이들을 관찰하며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어느 쪽일까? 왱이콩나물국밥집을 찾는 손님들은 어떤 장단점을 꼽고 있을까? 전주의 음식점들은 각기 어느 쪽인가? 음식창의도시를 선포하고 나선 전주의 음식은 과연 전국의 '갑','을','병'보다 월등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자 나는 문득 부끄러워졌다.
/유대성(전주왱이콩나물국밥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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