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말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의 '한영 공동기술개발 타당성 조사' 용역과제 수행을 위해 영국의 케임브리지를 다녀왔다. 교수들과의 면담을 마치고서 자투리 시간에 관광객들 무리에 섞여 케임브리지 구석구석을 거닐며 15년 전 유학을 처음 시작하던 때를 회고할 수 있었다. 케임브리지는 학교 도시이며 동시에 영국의 대표적인 관광 도시이기도 하다. 학기 중에는 도시 전체가 학생들로 시끌벅적한 학교이지만, 방학, 특히 여름방학 때에는 학생의 종적은 찾아보기 어렵고 골목마다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관광지로 돌변한다. 이렇게 케임브리지가 영국의 대표 관광 명품 도시가 된 것은 사회문화적 가치 유지와 상업적 이익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 감각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이 도시의 중심부는 건축과 조경 및 업종을 규제하며, 특히 역사 유적으로 가치가 높은 지역에서는 거주민이 큰 불편을 느낄 정도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그래서 대부분의 거주지는 기존의 외형을 보존한 상태에서 샤워룸, 엘리베이터 등 내부의 생활 편의 시설을 설치한다. 이렇게 개축하는 것은 헐고 새로 짓는 것 보다 비용이 훨씬 더 든다. 하지만, 이와같이 지속가능 주거지를 유지함으로써 대대적인 관광 유치로 보상 받는다.
최근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국가 이미지 메이킹 전략으로 '올드 브리태니아'를 천명하여 화제가 되었다. 집권을 하고 있는 보수당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 동시에 공격적인 관광 산업정책을 펼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일반적으로 영국은 금융과 관광산업의 나라로 여겨진다. 금융은 세계 1~2위를 다투고, 관광도 세계 6위권이기 때문인데, 사실 제조업도 세계 6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영국의 제조업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 이유는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 제조업을 첨단 고부가가치 제조업이 대치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첨단 제조업은 국가 총생산에 이바지하는 바가 큼에도 불구하고 고용창출 등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 그에 비해 관광산업은 중소 상공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며 고용창출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번 캐머런 총리의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정책 제안은 선진국 영국이 당면한 양극화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반영하고 있다.
서울의 도시 계획을 둘러싸고 최근 대학로와 인사동 문화지구가 논란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이 지역들의 사회 문화적 가치가 상업적 이익보다 지나치게 강조되어 거주민들의 권리를 많이 침해했다는 판단아래 상업 지구를 대폭 수용하는 규제완화가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친 규제를 푸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사회문화적 가치를 크게 훼손해가면서 당장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이해당사자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하는 현재의 정책 전환은 큰 문제가 있어 보인다. 노래방과 편의점, 그밖의 유흥시설이 난립하여 다른 지역과 차별화가 없어진다면 결국 그 지역의 문화관광적 가치 감소로 경제적 실익도 사라질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때 최근 전주 한옥마을에 대해서 더 이상의 상업화를 지양하고 지속 가능한 주거지로 도약시키려는 움직임은 매우 바람직해 보인다.
여기서 더 나가 전북지역의 문화관광 자원을 발굴하고 그 가치를 제고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우리나라의 경제 개발기에 전북이 한동안 소외되는 바람에 전통적 문화유산이 산재한 지역이 경제논리에 밀려 재개발되지 않은 점은 다행이다. 하지만, 중앙정부와 지역민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생태적 가치가 크게 훼손된 곳이 태반이다. 지금이라도 지역민들이 관심을 갖고 나서 지속가능한 문화관광자원으로 잘 가꿀 필요가 있다.
/ 맹성렬(우석대 전기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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