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친구와 긴 얘기를 나눴다. 주고받은 얘기 중에, 사람이 무섭고 세상이 실망스러워서 살기 싫다고 한 그 친구의 말이 가슴에 콕 박힌다. 그 친구를 생각하며, 그리고 혹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내 또래의 누군가를 생각하며 다소 감상적일 수도 있는 글을 몇 자 적고자 한다.
20살 즈음, 인간의 본성이 악할까 선할까에 대해 다른 친구와 재미삼아 얘기한 적이 있었다.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었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고 굳게 믿었던 것만은 기억이 난다. 지금 그 친구가 나에게 다시 묻는다면 나는 선뜻 대답할 수 없을 듯하다. 그렇게 심오한 주제를 선악의 흑백논리로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세상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들을 보고만 있어도 인간이 선하다는 건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들만 보고 있으면 불법과 편법을 저질러 놓고도 태연한 얼굴을 한 일부 지도층 인사들과, 인간이 저질렀다고 믿기 힘든 끔찍한 범죄들에 대한 기사가 끊이질 않고, 인터넷상에선 마녀 사냥이 가득하다. 가끔은 사람을 지나치게 믿은 것이 독이 되기도 하고, 너무 착하면 바보 취급 당하기 십상이다. 내 주위에 있는 착하고 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새삼 고맙고, 신기할 정도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를 이루고 있는 건 대부분의 평범하고 착한 사람들이다. 사는 것이 힘들면서도 함께 힘든 얘기를 나누며 서로의 등을 토닥이고, 자신도 가끔 살기 싫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가 죽고 싶다고 말하면 기를 쓰고 설득하는 착한 사람들 말이다.
보노보라는 영장류가 있다. 무한경쟁, 전쟁, 학살, 남성지배 등 우리 사회와 너무 닮은 침팬지와 달리, 암수 관계가 수평적이고 약자를 보호하며, 평화를 추구하는 보노보.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조국 교수의 「보노보 찬가」에서는 우리 안에는 침팬지의 본성 뿐 아니라 보노보의 본성도 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침팬지들이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정글 같은 대한민국에서, 우리 사회의 보노보들이 좀 더 활약하고 서로 연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에서 얘기하는 보노보 같은 사람은 좀 더 많은 사회적 함의를 갖고 있겠지만, 나는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것을 기초로 사소한 것들을 바꾸고 싶어 하는 우리 주변의 착한 사람들이 보노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의 슬픔은 사람을 절망하게 만들 수 있기에 큰 힘을 가졌지만, 서로의 슬픔을 이해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의 연대는 그것을 넘어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서로를 북돋우고, 위로하면서, 최선이 없으면 차선이라도 찾으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이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밑바탕에 단단히 새겨져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친구에게 말하고 싶다. 세상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버리고 냉소하는 방관자가 되기 전에, 같은 생각과 고민을 하는 주위의 사람과 손을 잡아보자. 무언가 달라질 거란 생각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사망한 지 올해 30주년을 맞이한다는 존 레논도 노래 'imagine'에서 말했다.
당신은 내가 몽상가(dreamer)라고 말하겠지요.
그러나 그건 나 혼자가 아니랍니다.
그리고 당신도 우리와 함께하길 바라요.
그러면 세상은 하나처럼 살 수 있을 거예요.
/ 곽화정(전북환경운동연합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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