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남비가 등장했다. 빨간 남비만 보면 노송동의 얼굴 없는 천사가 떠오른다. 성탄절에 10년간 기부하고 있다는 그(녀)는 누구일까. 무슨 곡절이라도 있을까. 큰 부자일까.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재벌아들 주원은 서민처녀 라임이 다치자 병원에 데려다 주면서 관심 있어서가 아니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 위한 선행이라고 서슴 없이 말한다. 그는 노블한가? 조모씨는 37년 전에 사놓은 땅이 그대로 갖고 있었더니 큰 재산이 됐다며 거액을 자선단체에 쾌척했다. 평생 소신껏 성실히 살아와 주위의 존경을 받는 그이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귀감으로 알려지자 거북해했다. 거상 김만덕 할머니께서는 굶어 죽어가는 제주민들을 살려냈지만, 한 때 관기 신분이었기에 노블레스를 들먹이기에는 오히려 죄송하기까지 하다.
문제는 말이다. 바른생활 연기자 차인표 님도 노골적으로 그 말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돈 많고 적음으로 노블 운운하지 말라는 것. 임금을 삭감해 거기서 생긴 이윤으로 불우이웃돕기에 기부한 경우도 있고 뇌물로 개발정보를 빼내 땅 투기하여 게걸스럽게 번 돈으로 각종 후원금을 내면서 유지 행세하는 사람도 많다. 석유독점으로 거부가 된 록펠러나 전쟁상인의 악명을 지녔던 듀폰이 자선사업을 시작한 것은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상당한 부를 이룬 뒤다.
국민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거나 형벌을 모면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기부한 경우 높은 지위와 부귀에도 불구하고 노블레스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일단 부자가 되면 품위 있고 도덕적으로 흠 없이 행동할 수 있게 된다. 그 단계에 도달하기까지 저지른 부정한 행위는 운이 좋아 영원히 비밀일 수는 있어도 끼친 패악의 그늘은 짙다. 그 그늘을 걷어내는 것은 대게 다음 세대의 일이다. 이 경우의 기부는 자신이 오염시킨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마지막 도리이지 노블 운운할 일은 아니다.
원래적 의미의 귀족이 사라진 지금 기부와 자선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가난하지만 나눔이 몸에 밴 사람은 노블해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그러할 뿐이다. 계급사회에서 어쩌면 귀족의 생존전략이기도 했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심리적 메커니즘에 속을 시민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진짜 존경할 만한 부자도 A4 한 장은 금새 채울 정도로 많다. 자꾸만 숨으려는 그들을 우아한 정책으로 드러내주면 좋겠다. 노블이라는 형용사는 제발 빼고!
불교용어 중에 동체대비(同體大悲)라는 말을 좋아한다. 요지는 '내 몸은 이 지구에서 얻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고 내 생각이란 것도 어디선가 흘러들어와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나 아닌 것들의 모임이다. 나를 구성하는 나 아닌 것들은 나무에 비유하자면 뿌리에 해당한다. 나무의 뿌리에 양분을 주듯이 나 아닌 것에 양분을 주면 나는 저절로 존재한다. 결국 나 아닌 것을 사랑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의 하나다.' 그리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라훌라의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있다> 를 펼쳐보곤 한다. 나라고>
신도 버렸다는 사람들이 지구촌 곳곳에 있다. 신은 버렸을 망정 인간은 인간을 버릴 수 없음을 좀 더 증명하는 새해이면 좋겠다. 다함께.
/ 최재덕(전주시민독서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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