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설날 우리집 밥상에는 돼지갈비 대신 장조림용 고기가 등장했다. 갸우뚱한 가족들의 눈길에 물가가 많이 올라 어쩔 수 없었다는 엄마의 푸념이 이어졌다. 분명 몇 년 전만해도 만 원짜리 한 장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많았는데, 언젠가부터 만 원짜리가 아닌 오 만원, 십 만원으로 장을 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를 증명하듯 이 날 저녁 뉴스는 지난 1월 소비자물가가 4.1% 상승했으며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치솟는 물가에 정부는 공공요금 안정, 유류세 인하 검토 등을 내세우며 "물가잡기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웬걸, 1월 공공요금은 지난해 12월과 비교했을 때 4년 4개월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한편 우리는 밥상의 중심에 있었던 돼지고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제역 여파로 현재까지도 돼지고기 값은 여전히 상승세. 우리 지역에서는 다행히 현재(7일 기준)까지도 구제역 청정지역으로 불리고 있지만 쉽사리 마음을 놓기는 어려운 상태다. 지난해 11월 말 처음 발생한 구제역은 경기도, 부산까지 퍼져 돼지 살처분 규모가 316만 마리를 넘어섰다. 이에 각 자치단체에서는 축산농가 소독, 이동통제소 설치 등을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구제역을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틈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전년 대비 42.6% 증가했다. 정부는 한·미 FTA 재협상 결과와 함께 쇠고기 관세도 점진적으로 철폐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위한 음모론을 펼치며 구제역 초동 대응의 미숙을 꼬집었다.
설 연휴 때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구제역 피해를 입었던 친척 분을 만났다. 그 분은 "대통령이 파격적인 지원을 해줘서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피해를 신고했지"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실제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첫날부터 군을 파견해 구제역 진압에 나섰고 시가 보상, 백신접종에 따른 손실·사료대금 보상, 부채 감면 및 생활비 보조 등을 조치했다. 그 결과 여섯 번째로 구제역 발생이 멈췄고 살처분 가축은 모두 합쳐 단 2천200마리였다.
현 정권이 정치적인 이유로 일부 구제역 방역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문제는 따로 있다. 구제역을 잡지 못해 우리나라 축산업계의 기반 자체가 붕괴될 수 있는 상황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한 달간 연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것은 삼호주얼리호 사건이었다. 구출작전부터 선장의 영웅성까지 칭찬일색이었다. 물론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우리나라 선원들의 신변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서민들에게는 삼호주얼리호 사건 만큼 구제역 또한 중요하다.
현 정권은 또 이렇게 이번 구제역 파동에 대한 어떠한 책임 없이 어물쩍 넘어갈 것이다. 지금 구제역에 대한 보상금으로 지급된 금액이 2조원에 달한다고 하는데, 장기적으로 보면 축산업 붕괴가 가져올 피해액은 수십조 원에 이를 것이다. 게다가 육류는 수입에 의존해야하는 참혹한 상황이 왔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물 간 노래지만 '세상은 요지경'이 문득 떠오른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부디 똑바로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모르겠다.
/ 양수지 (전북대신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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