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이과였어? 문과였어?" 대학교 3학년이 된 지금도 가끔 그런 질문을 받곤 한다. 인문계 고등학교의 경우, 1학년 말 무렵에 문과와 이과를 선택해야 한다. 과학을 좋아하지만 수학을 어려워하던 나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선택이었다. 결국, 이과를 선택했지만 3학년 때 문과로 전과(轉科)를 하고서도 잘 적응하지 못했었다.
이과형 인간, 문과형 인간이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논리적, 분석적 성향이면 이과형 인간, 감성적이면 문과형 인간으로 분류될 수 있을까? 이러한 분류로 인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불균형적이고, 편협해지게 된다. 대학에 와서도 이공계와 인문계로 나뉘어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교양수업 외에는 자신의 전공과 관심 분야에만 깊이 파고들게 된다. 이제 학문 간의 높아진 벽을 허물고 여러 학문 영역의 융합을 통해 통섭형 인간으로 나아가야 한다.
IT산업의 혁신을 일으킨 스마트폰, 태블릿 PC로 인해 우리의 생활형태도 바뀌어 가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이용해 와이파이나 3G 이동통신망으로 언제든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으며,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인터넷 뱅킹, 영화예약, 내비게이션 활용, 뉴스 열람 등이 가능하다. 증강현실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현재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음식점, 약국 등의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아이팟과 아이폰, 아이패드 등으로 성공을 이룬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는 공학 뿐 아니라 예술, 문학, 악기연주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쏟았다. 그는 직관과 감성, 통찰력으로 예술과 경영, 예술과 IT를 접목한 '창조형 CEO'다. 이처럼 시대는 한 쪽으로 치우친 인간이 아니라 융·복합에 능한 통섭형 인간을 필요로 하고 있다.
대학(University)의 어원을 살펴보면, '태양계의 공전운동처럼 지식이 대학을 중심으로 모인다'는 뜻이라고 한다. 때로는 전공과 관련 없어 보이는 학문을 접하며, 학문과 학문 간의 통섭을 통해 더 큰 통찰로 나아갈 수 있다. 대학의 목적인 진리 탐구를 위해서는 학문 간의 경계를 허물고 여러 분야를 두루 공부해야 한다. 서로 다른 분야로 여겨지던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인 과학 인문학은 학문의 위기를 넘어설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이공계과 인문학은 숲 속의 두 갈래 길이 아니다. 두 개의 길은 교차해 있으며, 넘나들 수 있다.
'통섭'이라는 책에서 '에드워드 윌슨'은 "진리는 때로 직선으로 때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학문의 경계를 관통하거나 넘나드는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 놓은 학문의 울타리 안에 앉아 진리의 한 부분만을 붙들고 평생 씨름하고 있다."고 했다. 고대·근대 철학에서는 인문사회, 자연과학의 구별 없이 모든 분야를 넘나드는 지적 탐구가 이루어졌다. 16·17세기에 과학혁명이 일어나면서 과학기술과 인문학이 분리되고, 과학기술이 고도로 전문화되면서 이과와 문과의 인위적 구분이 생겨났다. 20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한 뿌리였던 과학기술과 인문학이 갈라졌고, 서로를 소통이 어려운 영역으로 바라보기에 이르렀다.
이제 다시, 과학기술과 인문학적 상상력의 통합이 중요시되면서 통섭이 시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전체를 통찰할 수 있는 통섭형 인간을 위해서는 학문 간의 인위적 경계와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선 통섭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 박소연(전주대 국어교육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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