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청소년 영화의 산파역이자 지킴이인 이병노 전북청소년영화제 집행위원장(55·전주공고 미술 교사)은 전북과 청소년 영화의 필연성부터 설명했다.
이 집행위원장이 전북청소년영화제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3∼2004년.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 스탭(편집 분야)으로 참여하면서 큰 영화제(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우리 지역에서도 충분히 승산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다.
"우리 지역은 국제영화제란 큰 자산이 있습니다. 이를 활용할 경우 청소년들에게 재미 있는 영화 놀이터(?)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특히 미디어교육의 경우 잘만 활용하면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 보다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우선 시나리오를 쓰면서 문학에 대한 능력을 키우게 되고, 사진과 미술분야를 대하면서 비주얼 분야에 대한 감각을 키우고, 서로 간에 팀워크를 이루면서 협동심과 의견조율 능력도 기를 수 있기 때문.
이후 그는 주변 교사들을 모아 지난 2005년 '전북영상교육연구회'란 교과연구회를 만든다.
여기에는 나이, 출신, 성별을 불문하고 평소에 영화나 청소년에 관심이 있는 교사 20∼30명이 참여했으며, 이들은 전주영상위원회와 전주영상정보진흥원 등의 전문가들로부터 영화와 관련된 지식과 기술을 배우게 된다.
교육은 학교 수업을 마친 후 오후 6∼7시부터 새벽 1∼2시까지 하루고 빠지지 않고 거의 매일 이어졌다.
"당시 저는 고창지역 학교에 근무했습니다. 집은 고향인 부안에 있었고요, 고창에서 부안으로, 전주로 미친 듯이 영화를 배우기 위해 뛰어다녔죠."
뿐만 아니다. 또 다른 한 축인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데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영상분야에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이 많은데도 불구, 이들 학생들을 체계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기 때문. 또 청소년 영화제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영화를 만들 줄 아는 청소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일주일에 두 번씩 방과 후에 아이들을 학교(전주공고)로 불러 영화기술을 전수했다.
"모두들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선생님들, 학생들 모두 청소년 영화제 하나만 보고 매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 끝에 드디어 전북청소년영화제가 지난 2007년 첫 발을 내딛는다.
너무 튀거나 화려한 영화제는 아니었지만 지역 청소년들이 영화를 통해 서로 호흡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한 영화제가 만들어진 것.
그리고 현재 국내에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다음으로 큰 청소년영화제로, 다른 지역에서 부러워하는 청소년영화제로 전북청소년영화제를 키워냈다.
실제 연간 30∼40편이 출품되는 전북청소년영화제는 경기와 부산, 전남 등 다른 지역 청소년들이 참여하기를 희망하는 전국규모 청소년영화제로 몸집이 커졌다.
"때론 힘이 듭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능력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생각하니 너무나 행복합니다."
그는 한국사진작가협회에 가입할 정도로 사진분야에 관심이 많다. 이것이 영상분야의 관심으로 이어졌고 전문가 수준까지 성장했다.
이를 통해 전북청소년영화제를 만들었고, 전주국제영화제에는 민간홍보에 참여하고 있으며, 전북독립영화제 감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부안시민문화모임 '노을'을 만들어 지역 주민들에게 미술과 조각, 도예, 서예, 사학 등을 가르키고 있다.
다양한 나눔활동으로 힘 들만도 하건만 아직은 괜찮다는 그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우리 사회가 보다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다면 제2의 제3의 청소년영화제를 만들고 또 만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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