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이 물려준 일을 내가 이어받았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이제 내 아들이 기꺼이 이어받고 있으니 고맙고 기쁠 뿐입니다. 대물림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행복이지요"
김종대씨는 300여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윤도의 제작기술 보유자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수작업으로 만드는 전통나침반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조부 김권삼과 백부 김정의에 이어 아들 김희수(50)에게 전수, 4대째 윤도 제작 기법을 가업으로 잇고 있는 장인이다.
어렸을때 부터 손재주가 많았던 김씨는 어깨너머로 백부의 기술을 익혔지만 가업을 물려받을 생각은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협에 다니고 있을때 조카의 재능을 눈여겨 보아 왔던 백부가 가업을 이어받으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 연으로 11년 다니던 농협을 그만두고 지금까지 56년 동안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윤도의 원리는 중국에서 이미 한대에 실용화 되어 점을 치는 기구로 사용되었다. 풍수가의 전유물이었던 윤도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뱃사람들이 방향을 보는데 이용하기도 하고 묘자리를 보는 지관의 필수품이며, 일반인들에게도 유용하게 쓰이는 생활과학 도구로 자리잡았다.
윤도는 대개 크기로 종류가 나뉘어 진다. 윤도에 그어진 원이 만들어낸 한 칸을 '층'이라고 부르는데 1층부터 24층까지 그 쓰임이나 내용에 따라 종류가 구별된다. 윤도의 소재는 200년이 넘은 대추나무다. 잘라진 채로 물속에 1~2년, 다시 은근한 곳에 3년 정도 놔둔 후에야 칼을 댈 수 있다.
"50~60년대에는 꽤 인기가 있어 한꺼번에 100여 개씩 주문이 밀릴때도 있었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변해 기계로 찍어내는 나침반이 나오게 되었으며, 그나마 수요가 거의 없읍니다. 요새 젊은이들은 힘든 일을 하려고 하지 않잖아요. 내가 죽으면 이게 끝이 날까 염려 되어 큰 아들(희수)을 설득해 전수 장학생을 시키고, 이수자를 만들어 지금 조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김종대 어르신은 "오직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윤도를 지켜내겠다는 일념으로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니던 아들을 1996년 낙향시켜 전수자로 삼았을 때가 가장 고민스러웠고 힘든 결정이었다"고 말한다. 윤도의 맥을 잇기 위한 그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정부는 1996년에야 김종대씨를 윤도장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그때부터 매월 130만원의 전승금(전수자 교수비)을 국가로 부터 지원받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돈이 되지 않는 윤도를 만들며, 맥을 이어가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살아오신 김종대 어르신이 지금보다 더 낳은 여건에서 윤도의 맥을 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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