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형(73)은 스스로를 '굿쟁이'라고 부른다. 연기에 대한 자긍심과 욕심이 대단하다. 배우 인생으로 54년을 보냈지만 "아직도 극본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말할 정도다. '영원한 현역'인 셈이다. 연기에 대한 '무한 욕심'을 보이는 덕분에 대한민국의 시청자와 관객들은 행복하다. 그러한 열정의 비밀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흔히 '살아있는 연기교과서'라는 찬사를 받고 있어 대하기가 어려울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스스럼없고 소탈했다. 꿈나무를 키우기 위해 매달 고향인 정읍에 내려와 골프모임을 갖는데, 막 라운딩을 끝내고 그 모습 그대로 달려왔다. 정읍경찰서 맞은 편 찻집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타기 전에 1시간 30분가량 만났다.
- 안녕하십니까? 요즘 정읍을 자주 내려오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매달 내려옵니다. 두 가지 일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는 골프 모임이고, 또 하나는 조그맣게 설립된 장학회 일 때문입니다."
- 골프 모임이라뇨?
"정읍에 있는 기업인들이 매달 모여서 골프를 치는 정타회라는 모임이 있습니다. 거기서는 골프 꿈나무를 키웁니다. 그 애들이 국가상비군이 될 때까지. 5명을 키우고 있죠. 키운다기보다 보조하고 있죠."
- 정타회는 어떻게 운영되는데요?
"회원이 40명입니다. 회원들이 스스로 조금씩 출연하고, 저희들이 기부하는 돈도 있고, 거기서 학생들을 지원하는 거죠. 이번에 전북교육감배 골프대회에서 1등을 한 아이가 정타회에서 지원하는 아이입니다. 여자 골퍼인 이정은 파이브(24 호반건설)도 정읍 출신입니다."
- 장학회는요?
"이름이 법인장학회인데 순수 민간인들이 모여서, 한 15년 됐습니다. 회원들이 있어 월 회비를 내시고, 저희들은 고문이랄까 해서 일정액을 내놓고 있고…"
- 말하자면 지역인재 양성에 기여하는 거군요?
"제가 한 3-4년 후면 정읍에서 조그맣게 아이들 공부를 시킬 수 있는 그런 걸 하려고 해요. 그런 일로 미리 와서 고향을 자꾸 둘러보고… "
- 아이들 일이라면 무엇을?
"연기에 대한 거죠. 제가 어차피 나이를 먹고 그러면 귀향해야 되는데, 미리 준비를 해 가지고 연차별로, 여기서 버스 편으로 갈 수 있는 숲이 있는 곳에서 애들하고 같이 지내면서 보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그 동안 꾸준히 연기활동을 해오셨지만 최근 들어 더욱 활발하신 것 같습니다. SBS 월화드라마 〈추적자〉에서 엄청난 카리스마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KBS2 〈승승장구〉에서 오랜 경륜과 만만치 않은 입담을 과시하셨는데요?
"제가 1958년도부터 연극을 시작했습니다. 그쯤해서 우리나라 대학극 동아리가 서울대 연대 고대에서 출범해서 우리나라 연극계를 이끌기 시작했어요. 그 가운데 제가 끼어들어가 있었어요. 우리나라 연극이 동인제 연극단체에서 상업극으로 넘어가는 부분에 (제가) 같이 있었고, 그것이 지나서 영상미디어 쪽으로 TV가 나오고, 그러면서 영화 쪽이 활발히 움직이고, 이런 부분을 제가 다 겪었기 때문에… 그 때 좋은 선생님한테 배운 전통극에 대해서 제가 상당히 귀하게 알고 가지고 있습니다. 그대로 답습을 하고, 그걸 좀 더 발전을 시키면서 그 동안 연기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20 몇 년 전부터 트렌디 드라마(Trendy Drama)가 인기를 끌면서 유행에 따른 극들이 많이 나왔어요. 저희들은 전통파라고 자처하니까, 전통극이 활발하게 움직여야 사람들한테 감동을 줄 수 있는 극이 나오거든요. 그 부분을 고수하는 분이 이순재씨, 신구씨, 저, 최불암씨죠."
- 이른바 H4(할배 4인방)이군요? 그 명칭은 누가 붙인 겁니까?
"꽃미남 아이돌하고 얘기하다가, 한류 아이돌이 붙인 것 같애요."(그는 〈승승장구〉에서 H4 중 내가 막내다. 내가 노래 부르면서 그들을 즐겁게 해줘 '박카수'라 불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H4중 누가 제일 외모가 나은 것 같냐?'는 MC 김승우의 질문에 망설임없이 '내가 제일 낫다. 우리끼리 얘기지만 이순재씨는 키가 너무 작다, 신구씨는 벌써 틀니를, 최불암씨는 앞뒤로 나오고 쳐졌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낸 바 있다.)
- 선생님은 한때 연기생활과 관련해 자살을 시도했다면서요?
"1963년에 KBS TV 공채 3기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입사 2년 만에 김혜자씨 등 4명이 연기를 못한다는 이유로 쫓겨났습니다. 그 때 세상이 나를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고 느껴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실제로 국립극단 출신인 그를 좇아낸 이유는 드라마의 문제점을 자주 지적해 눈엣가시였기 때문이다.) 말라리아 치료약인 키니네로 자살하려고 여러 약국을 돌아다니며 한 웅큼을 모았습니다. 거의 성공할 뻔 했지만 먹고 난 뒤 다 토해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정읍으로 내려갔습니다."
- 선생님은 "우리나라에 스타는 많은데 배우는 없다"고 쓴소리를 하십니다. 원로배우 입장에서 소위 한류 스타들이 연기력을 갖추지 못한데도 우쭐거리는 것을 지적하신 건가요?
"아니죠. 그런 나무람이 아니고요. 그것은 사회적인 경향이니까 이야기할 생각은 없고…, 소위 의식을 가지고 대중예술을 한다는 사람이 이 정도 되면 작품성과 이런 것으로 감동을 줘야 되고 연기를 하는 배우들을 길러야 하는데 유행에 영합하는 그런 얄팍한 걸 가지고는 오래 갈 수 없다는 얘기죠. 그런 쪽으로 스타는 있을 수 있어도 우리나라 전체로 봐서 순수예술이나 연극, 대중예술이나 그런 배우가 많이 없다는 얘기죠."
- '연기란 여러 사람이 어울리는 공동작업이다' 이런 말씀을 강조하시는데요?
"연기예술이라는 게 연극이 모체가 되니까요. 연극은 제8의 예술로서, 문학, 건축 미술, 음악 등 여러 분야가 모여서 하기 때문에 한 가지만 알아서 되는 것이 아니죠. 그리고 항상 준비되어야죠. 예를 들어 작품을 분석하고 거기에 대비한 인물 창조를 하기 위해서 인물간 서로 교류라든가, 그 작품이 뭔가를 남기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아야 하죠. 거기다가 나의 메시지도 넣어서 연기술로서 표현할 수 있는 작가적인 입장이 돼야 그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거죠. 그냥 시키는 대로 기계를 향해서 연기하는 것은 배우예술이 아니라는 거죠."
- 선생님은 흔히 '살아있는 연기교과서'라고 불립니다. 자신의 연기철학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과찬입니다. 저의 경우는 우선 작품을 분석해서 그 인물에 대한 주변상황을 다 알고, 만약에 내가 그 사람이라는 가정 하에 출발을 해서 가능성을 여러 가지 두고, 그동안 내가 관찰해 왔던 다른 여타의 인물들 중에서, 그 특성들을 모아서, 인물을 창조해 내는 거죠. 그 안에는 소위 상황에 의해서 변해지는 그런 인물, 우리 본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죠. 희로애락이라든가 이성이나 감성이라든가 모든 걸 포함해서 그냥 표피적인 걸 표현하는 게 아니라 내면의 깊은 면까지 표현해야 되는데 그 역할창조가 저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저는 작품을 대할 때도 그냥 스쳐지나가지 않고 항상 저의 상상의 세계 속에서 계속해서 갈등을 하는 거죠. 나만이 갖는 내 형태로서, 내안에서 다른 사람을 만들어 내는 거죠."
- 어쩌면 교과서적인 이론에다 생생한 경험이 합쳐진 살아있는 얘기군요?
"그렇습니다. 연기이론이라는 게 소련의 스타니슬라브스키, 미국 액터 스튜디오의 리스트라스버그 연기이론도 있고, 유럽이나 인도 등 여러 이론이 있습니다. 이런데서 비롯된 이론은 아주 순수한 백지 위에 색깔을 칠해 나가듯이 사람이 변해가는 과정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에 이론은 대체로 공통적이라고 봐요. 그 이론에다가 우리나라 것, 성리학 쪽에서 가져오는 인의예지라든가, 또 이성과 감성이 어떻게 충돌해서 어떻게 해 내는가, 변해가는 과정이라든가. 어차피 동서양 사람이 사는 과정이 같고 감성이나 이성이 같은 거라 보면, 우리 것도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해서, 저는 그 쪽을 추구하고 있죠. 그리고 이론과 실제라는 것이 전부 훈련입니다. 꾸준한 연습이죠."
- 50년 넘게 한 우물만 파셨는데 연기가 싫증난 적은 없었습니까?
" 저는 아직도 극본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연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다른 사람의 역할이 탐날 때도 있어요. 한 마디로 무한욕구죠. 저희는 끝이 없어요. 그리고 저희는 완성도라는 것을 거의 믿을 수 없으니까요. 어느 정도가 완성된 것인지 저희는 잘 모릅니다. 관객들이 보고서 평가해 주실 적에 그걸로 위안을 삼는 거고, 제 상상력으로 만드는 인물들이 감동을 줬을 때 저에 대한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죠. 그게 좋은 거죠."
- 지금 출연하고 계신 작품과 앞으로 계획은?
"tvN 〈제3병원〉과 채널A 〈판다양과 고슴도치〉에 출연 중이고 〈추적자〉 이후 SBS 월화드라마 〈드라마의 제왕〉이 11월 5일 첫 방송될 예정입니다. 영화 〈가문의 영광5- 가문의 귀환〉이 촬영 중이고 〈고령화 가족〉을 11월에 찍습니다. TV(KBS2)는 내년 1월에 이순재씨 신구씨와 저, 3명이 시트콤을 합니다. 또 〈추적자〉를 했던 작가분 작품이 내년 6월에 방송될 예정입니다."
- 그 동안 프리랜서로 활동하다가 이번에 소속사(레젤이엔엠코리아)에 처음 둥지를 트셨는데 그 이유는 뭡니까?
"다작(多作)을 하다 보니까 혼자 힘으로는 해내기가 너무 어려워졌어요. 젊은 시절에는 아무 상관이 없었는데. 기획사에서 개인적인 홍보라든가 그런 걸 일괄 책임을 지기 때문에 제가 정신을 덜 쓰겠죠."
-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걷는 것, 스트레칭 하는 것, 또 골프를 좋아하니까 골프연습을 하지요. 저는 서울서는 거의 필드에 나가지 않습니다. 고향에 내려와서 이틀이고 삼일이고 하고 올라가고 그렇습니다."
- 아, 그리고 사모님한테 두 번 퇴자 맞으셨다면서요?
"그렇습니다."
- 당시 잘나가지 않으셨는가요?
"그렇지 않았어요. 저희가 먹고 살만한 때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언제적이냐면 KBS 방송공사 설립이후 좀 나아진 거죠. 그 전까지 방송 3사가 있어도 생활이 힘들었어요. 지금도 저희는 용역입니다. 근로자가 아니에요. 그 전에는 국민연금도 못 들어갔습니다."
- 요즘 젊은 아이들이 서로 연예계에 진출하려는데 대해?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의식을 가지고 좀 더 발전적으로 해줬으면 좋겠어요. 너나할 것 없이 '전 국민의 연예인화' 이것은 곤란하다는 거죠."
- 끝으로 도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저희는 예향의 고장이라는 것은 다 아는 거고요. 한 가지 섭섭한 것은 영화제라든가 문화적인 행사를 할 때, 고향에서 나올 수 있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육성해 주는 쪽이 낫지, 이름을 빌려와서 하는 행사는 하지 말라는 거예요. 처음은 어려우나 시간이 가면 분명히 인정을 받습니다. 그리고 문화회관, 문예회관 등 건물 짓기를 좋아하죠. 그런데 문화적인 혜택을 시민들한테 못주고 있는 형편이에요. 그런 것을 지어 놨으면 시민 자신들이 자주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이 되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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