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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형 원로배우는 - '살아있는 연기교과서'…후배들에 무서운 선배 정평

▲ 박근형 배우와 본보 조상진 선임기자가 이야기도중 환하게 웃고있다.

박근형은 배우 생활만을 천직으로 삼고 54년을 외길로 달려왔다. '살아있는 연기교과서''연기의 신(神)'이란 말이 그냥 붙여진 게 아니다. 넘치는 '끼'에다 끊임없는 절차탁마의 숙련기간을 거쳤기에 가능했다. 그러는 사이 신산(辛酸)의 고통이야 왜 없었겠는가. 배고픔을 견뎌야 했고 방송사의 잘못된 풍토를 바로잡기 위해 나섰다 핍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매 작품마다 탁월한 인물 성격의 묘사를 통해 그가 아니면 상상이 안 되는 연기력을 보여줬다.

 

박근형은 1940년 정읍시내 본정통에서 여관업과 음식점을 크게 하는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8남매 중 셋째였다. 어려서부터 남 흉내내기를 잘 했고 어른들 앞에서 노래하기를 좋아했다. 그런 끼는 초등학교 때부터 발휘되기 시작했다. 정읍 서초등학교 4학년 때 연극부에서 무언극으로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어 전체 3등으로 입학한 호남중학교에서 브라스 밴드에 들어가 큰 북을 쳤다. 그리고 휘문고 1학년 때는 유치진 선생이 주도하는 제1회 전국남녀 중고교 연극경연대회에서 사육신 박팽년 역을 맡았다.

 

그리고 중앙대 연극영화과 1기로 입학했다. 하지만 부친은 배우의 길에 들어서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소위 '딴따라'생활이 불안정하다는 이유였다.

 

반면 모친은 학원비를 대주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부친으로부터 인정받은 것은 1973년이었다. 그가 주연한 영화 '국회 프락치사건'을 대한극장에서 보고 "이제야 내 아들이 제대로 하는구나"하고 안도하셨다.

 

연극을 배우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나소운 이진순 이해랑 안광남 이근삼 선생 등이다.

 

연극에 전념하다 1963년 KBS TV 공채 3기로 옮겼다.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하고 TV나 영화 등 다른 장르에도 관심을 갖고 싶었다. 그러나 입사 2년만에 쫓겨나야 했다. 자살 시도를 했으나 실패하고 정읍으로 낙향했다. 1년간 음식점 일을 돕고 있는데 엽서 한 장이 날아왔다. 극단에서 같이 연극하던 이효영씨가 "연극 딱 한편만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게 덜컥 제3회 동아연극상을 받게 됐다.

 

결국 KBS에 화려하게 복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어 TBC와 MBC로 옮겼으나 겹치기 출연으로 배우의 생명력이 단축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1971년 프리랜서 선언을 했다. 하지만 프리랜서 생활은 어려움이 많았다. 방송사마다 제 식구를 우선 챙겼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1974년 영화 〈이중섭〉으로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TV 배우가 대종상 영화상을 타기는 초유의 일이었다.

 

그러다 1980년 전두환 정권 들어, 열악한 방송 환경을 개선하고자 '한국방송연기자협회'창설을 주도했다.

 

당시 출연료가 회당 4300원이었다. 너무 힘들어 출연료를 올려 달라고 1주일 동안 파업을 했다. 요주의 인물로 찍혀 4년간 거의 방송 출연을 하지 못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무서운 선배로 정평이 나 있다. 칸의 여왕인 전도연이나 제69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조민수 등은 그에게 혼나 눈물 꽤나 흘렸다. 덕분에 오늘날 연기자로 대성했다. 김남주는 딸과 같이 생각한다. 김자옥도 30대 초반 슬럼프로 2년간 연기를 떠나 있었다. 그때 "너는 이 시대가 공들여 키운 배우다. 너란 배우가 한명 나오려면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고 호통을 쳐 다시 돌아오게 했다.

 

그리고 가수 송대관과는 특별한 관계다. 고향 후배이기도 하지만 송대관 공연을 위해 자신의 공연을 펑크 낼 정도로 아꼈다. 송대관 역시 "뭘 줘도 아깝지 않은 형님"이라고 살갑게 얘기한다.

 

박근형은 그 동안 TV 드라마 150여 편, 영화 70여 편, 연극 50여 편, CF 20여 편에 출연했다. 그리고 백상예술대상, 대종상, 한국방송대상, KBS MBC SBS 연기대상 등을 수상했다.

 

가족으로는 고향 후배인 부인 이경자(67)여사와 사이에 2남1녀가 있다. 딸 재은(43)은 연기 아카데미를, 막내아들 상훈(33)은 배우겸 작곡가로 아버지 뒤를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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